우리의 모든 이야기나 주장 낱낱이 진위 파악해야
산 너머 절골에는 참말로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한때 그 골짜기는 나 혼자 차지한 삶의 자리였다. 학교를 가다가도 새 따라 벌레 따라 그 골짜기로 들어서고 만다. 그러다 개울에 터를 잡고 사는 가재들을 발견한다.
그냥 지나치다가는 찾아내지 못할 만큼 재빨리 움직이는 놈들이다. 어쩌다 돌 밑으로 숨어든 놈을 찾아 그 돌을 뒤집으면, 가재는 보이질 않고 전혀 다른 벌레들이 붙어 있다. 그렇게 돌 뒤집기를 수없이 되풀이해 양은도시락을 자연산 청정 가재로 가득히 채웠다. 집에 가져와서는 누나랑 맛있게 구워 먹었다. 한 철을 그렇게 가재잡이로 보냈다. 나는 그 맑디맑은 개울을 온통 뒤집어 자연산 가재 어장으로 개발했던 것이다.
좀 더 자란 뒤 어느 해 봄 따뜻한 햇살에 몸이 너무 나른해졌다. 언덕 위로 기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분명한 색깔을 띠기도 하였다. 회칠도 안 한 기숙사 시멘트벽이 누렇게 뜨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선생님 얼굴이 그리고 온 세상이 노랗게 변했다. 황달에 걸렸다. 급성 간염에다, 내 간에 디스토마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녀원에 들어가 수련 중이던 누님도 같은 증세로 집에 돌아와 쉬었다. 잘 모르긴 해도, 무분별한 가재잡이와 덜 익은 걸 허겁지겁 먹어댄 ‘탐도’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칠죄종’의 하나다. 사람이 세상에 살며 짓는 죄가 어디 한둘이겠는가마는, 가장 많이 짓는 무거운 죄가 자기가 살아가는 자리를 더럽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또 살아가려면 자연을 더럽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숨을 쉬는 것 그 자체가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가? 거기에다 먹고 자고 입는 것 모두 무수한 배설물과 폐기물을 양산하는 일이다.
지구 생태계의 보전을 외치는 한 환경운동가가 환경운동가들의 주장과 그들이 제시하는 자료를 동지로서 비판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환경운동가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나 자료의 반쯤은 접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부정확하고 과장이 많다는 것이다. 온 우주의 생명은 하나라는 교설에 바탕을 둔 수많은 주장들이 넘쳐난다. 이른바 가치체계를 일부러 무시하려는 이야기들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보전하자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나 행동들이 너무나 어이없고 난삽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대개는 외국의 유명 여배우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지만, 환경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방송에 나올 때 나는 그 얼굴의 화장기를 본다. 그 화장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은 또 얼마나 더럽혀졌겠는가? 진지하게 환경을 염려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화장을 하는 그 시간에 집안이나 동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공허한 주장으로 소음공해를 일으키지 말고, 그저 조용히 소박하게 사는 것이 생태계 보전의 영성일 것이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에 온 우주의 형편을 다 고려해 가며 자기 주장을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몰아쳐서는 안 된다.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려면 어떤 말보다도 그저 삶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별로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까지 교회에서 배우고 익혀 온 가치체계에 혼란이 생길 때가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오랫동안 단식을 하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스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고속철도를 내려고 천성산에 굴을 뚫으면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도롱뇽들을 지키겠다는 뜻이라 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며 갯벌을 살리자는 시위대에서도 아는 신부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회복시키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어떠한 경제적 가치에도 비길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고속철도와 간척사업, 탈진한 스님의 얼굴과 신부님의 열정에 찬 모습, 스님의 존엄한 생명과 신부님의 사제 성소, 산 속에 지은 고찰과 대도시의 눈부신 성당들, 늪지대의 도룡뇽들과 갯벌의 무수한 생명들, 이러한 영상들 앞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지 얼른 분별이 서지 않는다. 한 인간의 생명은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당신 목숨을 도룡뇽과 바꾸겠다고 하니, 가치체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엇나가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지구상에 처음으로 출현한 염기성 박테리아들이 배설을 했다. 산소다. 지표면에 무수히 번식한 그 박테리아들이 배설물인 산소로 대기권을 오염시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놈들이 산소로 호흡하는 호기성 박테리아로 진화했다고. 지구가 오염되어 우리가 더 이상 산소로 호흡할 수 없게 되면, 인간도 질소 호흡기관을 지닌 생명체로 진화할 것인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나 주장은 낱낱이 그 돌 밑을 뒤집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가재를 잡듯이 전혀 다른 생명체를 찾아낼 수 있다. 진실을 볼 수 있다.
휴일 사무실 창밖에 반가운 봄비가 내린다. 어디다 상추 씨앗이라도 뿌려볼까 궁리하다가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해본다. 인간의 욕심을 말릴 길이 전혀 없는 이 세상은 희망이 없다. 그래도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덜 먹으려고 하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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