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최선을
지난 3월 15일 수요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는 여느 수요일과는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일명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하였다. 지난 1992년 1월 8일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시위가 이 날로 제700차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15년 넘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줄기차게 이어져와 2002년에 벌써 세계기네스북협회에서 세계 최장기 시위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줄기차게 이어져온 것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이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일본대사관 앞에 나서는 것을 보면 코끝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수요시위 초창기에 230명이던 피해자 할머니들 중 105명이 세상을 떠나셨다. 최근에 돌아가신 박두리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15년 전 할머니들에게 증언을 부탁하면 맺힌 한이 많아서인지 항상 시간이 초과되었고 듣는 우리들은 안타까움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박두리 할머니는 유독 말씀이 없으셨고 그저 먼 산을 쳐다보듯 그윽해지시는 눈빛이 되곤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 깊은 상처가 전해져와 더욱 마음이 아파오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박두리 할머니는 차츰 자신의 속내를 보이셔서 다큐멘터리 영화에 등장하셨고, 과거를 회상할 때는 봇물이 터져 나오듯 4~50년간 감추어 두었던 이야기로 주체가 되지 않았던 할머니들은 이제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 그런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세상을 떠나시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서 우리 민족의 상처, 아니 우리 여성들의 상처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었기에 그 백성인 꽃다운 처녀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존엄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기에 여성의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힌 대표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수요시위에 참석하셨던 비슷한 연령대의 할머니가 피해자 할머니의 손을 잡으시며 자신을 대신해서 고통을 당하신 것이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셨다.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 민족의 십자가, 그리고 우리 여성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이다. 따라서 할머니들의 상처는 곧 우리들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4월이 되면 사순절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하지만 할머니들은 아직도 부활의 봄을 맞이하지 못하신다.
일본 정부가 아직도 공식적으로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공식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은 굳게 닫힌 대사관 철문 마냥 15년이 넘도록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이미 해결을 했다고 발뺌을 해왔으나, 2005년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는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에 일본정부는 더 이상 이 문제의 해결을 회피할 구실이 없으며, 한국정부는 이를 외교쟁점으로 삼아 협상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정부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언제까지 역사의 상처를 묵과할 것인가? 일본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다행한 것은 제700차 수요시위를 계기로 해묵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 차원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제700차 시위는 서울뿐 아니라 마산과 부산에서, 일본 동경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대만, 미국,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곳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동안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알려왔기 때문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는 이미 일본정부에게 진상규명과 법적 책임 이행을 권고한 바 있다.
올해도 우리의 슬로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되찾아 주자는 것이다.
이에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제안해 본다. 사순시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도 함께 기억해 주기를, 그리고 부활을 맞이하며 할머니들에게도 명예와 인권을 되찾는 부활절이 하루 빨리 오도록 함께 기도해 주기를. 굳이 덧붙이자면 매주 수요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질 수요시위에 한 번쯤 들러보거나, 수요일 미사나 기도 중에 특별히 기억해 주기를 또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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