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모더니즘의 선구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아래와 같은 예술적 유언을 남겼다.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쫓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추구했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 홀로 있을 때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아노,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이는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발언이다. 그는 서커스를 무대로 한 광대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인간의 삶 전체를 거대한 서커스로 본 그는 그가 펼쳐보이는 온갖 조형적 유희와 실험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화려한 회화극을 펼쳐 보였다. 일찍이 십대 후반에 기술적 표현의 최정상에 이른 그에게 ‘자연에 대한 충실한 묘사’(mimesis)로의 회화는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더구나 20세기 중반 세계대전을 겪은 인간은 기존의 철학적, 도덕적 가치관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무겁지 않은 유희적 표현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바로 이 순간 속물적 현대사회의 정신적 빈곤을 간파한 이가 바로 영민한 재주꾼 피카소인 것이다.
그 후로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역시 더욱 세련되고 충격적이며 새로운 조형적 유희 추구에 그치는 것을 보게 된다.
무작정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데 온갖 에너지를 허비하기 보다는, 가장 진실되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 주력하다 보면 이 시대의 감성이 녹아있는 새로운 조형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창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철학을 부활케하는 것”이라는 나의 할아버지 말씀을 깊이 새긴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유행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지만, 보편적 아름다움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박혜원 (소피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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