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복음 실천을
오월 마지막 날이 지방선거일이다. 또 하루를 논다. 이 화창한 계절에 하루를 더 논다는 것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이나 일하기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일이다. 이 좋은 축제가 우리 삶에도 참으로 기쁨이 되고 국가와 사회에도 진정한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저마다 이 사회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의 얼굴, 여기저기 내걸린 현수막이나 벽보에 박힌 사진들이 전에 없이 원색적이다. 무슨 투사나 지사형의 굳은 얼굴이 아니라 환하게 웃는 모습들을 화려하게 내보여서 우선 좋다. 그것도 여인들의 얼굴이 더 많아 좋다. 어렸을 때 면사무소나 지서의 칙칙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무슨 후보자들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 보인다. 그때 우리 악동들은 어른들의 핏발이 선 눈을 피해 가며 그 결의에 찬 얼굴들에서 눈알을 뽑아버리고 입을 찢어버렸던 것이다. 거기에다 험한 세월의 비바람까지 심술을 부려, 우리들의 선거에 대한 추억은 너덜너덜 찢겨 나간 벽보들뿐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선거를 무슨 투쟁이나 운동이 아니라 축제라고 이야기하게까지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희생과 쓰라린 경험을 딛고 세운 역사의 발전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 고귀한 희생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우리들의 추억에 비겨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권력과 이권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을 국민이나 시민을 위한 봉사라는 포장으로 감추는 버릇이다. 누구나 다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겠다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이 되겠다고 나선다.
거짓이다. 그래서 국민은 선거철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종이 되어 버리는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른바 봉사나 공복이라는 말이 껍데기로만 돌아다니는 것이다.
공복이란 어느 한 개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종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봉사라는 말은 종으로서 섬긴다는 것이다. 윗사람으로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결코 봉사일 수 없다. 여러 나라에서 수상이나 장관들을 가리켜 ‘미니스터’(minister)라고 쓰거나 옮겨 쓴다. 종이다. 노비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성직자들을 가리킬 때에도 그 말을 쓴다. 그래서 교황님을 ‘종들의 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라 안팎이든 교회 안팎에서든 그 말은 거의 정반대로 뒤집혀 쓰일 때가 허다하다. 이 좋은 말이 너무나 멋대로 아무렇게나 쓰이는 것이 안타깝다. 종노릇을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뿐이지, 왜 하필이면 종의 탈을 쓰고 권력과 지배의 탐욕을 부려야 하는지 그런 말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의 뒤집힌 심사가 서글퍼진다. 어떻든 이번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머슴으로 종으로서 국민을 섬기겠다고 나선 분들의 희생 봉사 정신에 감사하며, 그분들이 지금 선거 때 하는 말이 오래도록 참말로 남기를 기대할 뿐이다.
성당 골목의 비좁은 통로 양쪽에서 주일 미사를 하고 나오는 신자들에게 선거운동원들이 지지 후보자의 명함을 나눠준다. 선거운동원들이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가는 평범한 일이겠지만, 정치지도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는 일은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습관이기는 하지만, 덕담이나 주고받을 뿐 서로 무슨 덕을 볼 일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실질적인 지지를 모으는 데에는 별 효과가 없으리라고 본다.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어떤 성직자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하여 적극적인 지지나 반대를 표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성직자들 또한 자신의 종교가 어떤 힘을 지닌 사회 세력으로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백성들 밑으로 들어가 온전히 썩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정치지도자 개인의 신앙이 진정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정치인이 공언하는 신앙과 그의 정치 행태가 잘 들어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정치인 자신만이 아니라 그 종교에 대한 국민의 신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모든 평신도들이 깊이 자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생활과 신앙의 괴리를 정치인들에게만 탓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부터 삶과 믿음이,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앙의 올바른 실천, 복음의 삶이 우리 구원을 향한 길이지만, 신자들의 여러 단체에서 봉사하는 평신도들이 그 구원의 기쁨을 체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성당은 성당이고, 돈벌이는 돈벌이다. 전혀 별개의 것이다. 성당에서 돈을 벌면 더 좋다. 성경이나 전례서를 편집하는 나도 그저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 편안하게 월급으로 받아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의로우신 분노로 채찍을 휘두르실 일이다. 신앙과 생활의 괴리가 특히 정치인들이어서 더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언젠가 국내 정쟁이 여러 날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을 때에, 교황대사님의 연설문에서 얼핏 읽었던 내용이 기억에 떠오른다. 여야의 최고 지도자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인데 우리 주교님들께서 그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할 길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셨던 것 같다. 그러면 한국의 정치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평신도들이 정치 경제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진정으로 복음을 실천할 때에 이 땅은 더 더욱 인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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