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산행은 싱그럽다. 어두움을 떨치고 잠을 깬 풋나무들의 숨소리가 정겹다. 선명한 선을 그으며 숲을 헤치고 내려 비치는 햇살을 향해 저마다의 얼굴을 내민 아가의 손톱만한 잎사귀들이 얄밉도록 앙증스럽다.
그래서 꽃보다 더 고운 것이 신록이라 했으리라.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패산이 나의 집 정원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애써 일을 만드는 분주한 성품 탓에 집 앞에 산을 두고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주변의 성화로 그야말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침 산행을 시작을 하였다.
산행길에 만나는 잠깬 자연도 곱지만 스치는 사람들의 정이 더 따스하다.
산마루에서는 짙은 화장으로도 목의 주름살은 가리지 못하는 할머니를 만난다. “건강합시다.” 인사가 힘차다. 산자락에 가까우면 늘씬한 키의 젊은 아낙이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도 곱다.
산중턱에서 만나는 30~40대의 신사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흰색 셔츠를 받쳐입고 검정색 양복 차림에 검정색 신발이 유난히 반짝인다. 아침신문을 옆에 끼고 작은 가방을 들었다. 무어라고 인사말을 찾을 수가 없다. 신발을 곱게 닦아 놓고 문간까지 따라 나와 “아빠! 잘 다녀오셔요.” 손을 저으며 배웅했을 가족들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출근길로 쓰일 지름길이 있는 산도 아니다. 하루도 아니고 거의 매일 같은 시각에 유사한 차림새로 만나는 중년 신사. 땅만 바라보고 걷는 처진 어깨가 아침 공기를 무겁게 한다. 어느 일요일 운동복차림의 밝은 모습은 어제를 더 슬프게 한다.
‘직장을 잃은 가장!’ 이런 생각이 나의 잘못된 상상이었기를 기대하며 가족의 시선까지도 피하여 홀로 진한 눈물을 삼키는 젊은 가장이 없는 사회가 어서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점길 (요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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