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나눔, 생명을 살리는 길”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산다. 사람도 동물처럼 섭생을 위하여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먹는 일(식사)은 다른 생물이 먹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식사는 생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 또 종교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식사를 통하여 인간에게 곡식을 제공하는 대지(흙)에 뿌리를 박으며 동시에 흙을 자신 안으로 합일시킨다. 그래서 인간은 식사를 통해 흙(자연)과 하나가 되고 밥(제물)은 인간에게 신성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밥을 낭비하거나 함부로 내버리는 것은 죄가 된다.
왜냐하면 그런 짓은 밥 속에 들어 있는 고귀한 가치들, 즉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힘과 하느님의 축복과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동을 얕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음식물을 내버리고 있는가? 한국인이 쓰레기로 버리는 음식물을 돈으로 환산하면 일년에 8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또 음식물 쓰레기는 환경오염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수거와 처리비용도 막대하다.
식사를 위하여 수고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인간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격언이 생겨났을 것이다. 밥을 벌고 만드는 데 필요한 많은 노동은 살려고 하는 인간의 의지와 연대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의 수고로 만들어진 밥은 본래 나누어 먹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종류의 식사를 한다. 먹는 것을 고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찬거리를 장만하고 정성을 다하여 요리를 하는 일은 즐겁고 재미있다. 요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요리를 할 때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특히 살림살이를 생각하게 된다.
살림살이를 잘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명을 살림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과 가정과 국가를 굳건하게 지키는 원동력으로써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
식사는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편식과 불량식품을 먹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을 해친다. 특히 청소년들이 ‘인스턴트식품’ 또는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방치하는 것은 청소년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인정이 담기지 않은 음식은 인간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비정하게 만들며 급기야는 증오심과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편식하는 사람이 편견을 가지기 쉽고 너그럽지 않으며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빈번한 외식(外食)은 살림살이를 망치며 가정을 와해시키는 중요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내 집에서 한 솥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식구이며 가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음식을 먹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고향의 음식 맛을 잊을 수 없다. 인간은 어디서 살든 나이가 들수록 고향의 음식과 엄마나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장 좋은 식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제철에 나오는 재료로 만든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요리이며 동식물을 막론하고 골고루 먹는 것이다.
혼자서만 잘 먹겠다고 하는 것은 독식(獨食)이다. 독식은 동지와 친구 또는 가족을 배신하는 짓이다. 식사를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할 때 사람다운 정이 오고 간다. 빵이나 떡은 애초에 갈라 먹도록 만들어지며,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도록 되어 있는 음식이다. 식사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내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밥을 나누어주기 위해 내미는 손길은 “이 사람을 존재하게 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다. 밥의 신비의 극치가 영성체이고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밥을 분수대로 나누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절제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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