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이주여성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필요
일요일 오후 혜화동 로터리를 걷노라면 동성고등학교 앞에서 혜화동성당까지 필리핀 시장이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7일장이라고나 할까. 각종 필리핀 음식과 생활용품을 파는 탁자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일요일이면 이 거리를 더욱 즐겨 찾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이다.
이들은 특히 임신기간 동안 더욱 더 이 거리를 찾는다. 낯선 이국땅에서 문화충격과 향수병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임신을 하게 되고, 입덧으로 인해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 고국의 음식을 찾아 이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4월 셋째 주 일요일 아일린은 남편과 함께 혜화동 필리핀 시장을 찾았다.
아일린은 이제 한국에 온지 석 달된 새댁이고, 임신 초기라 입덧이 심하여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해서 필리핀 음식을 찾아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스물 두 살의 어린 신부는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임신을 해서 더 어려운 처지에 있고, 그래서 필리핀에 가겠다고 어린애마냥 시종 조르기만 한다.
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사십 대 중반의 한국인 남편은 좀처럼 웃지 않는 시무룩한 아일린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어머니는 모처럼 나이든 외아들한테서 손자를 보게 된다는 생각에 행여 잘못될세라 아일린이 집안에만 있기를 원한다고 한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어야 하고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처지이니 그녀가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언어소통도 되지 않으니 더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집안에만 있으라고 하니 한국어학교를 갈 수도 없다. 남편에게 아내가 웃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아내를 웃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일러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한국어를 가르쳐 줄 자원봉사자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아일린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꽃다운 나이의 가난한 아시아 여성들이 나이 많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살기 위해 이주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아시아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급증하여 매년 2만 명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입국하고 있는데, 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고,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국가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여성들의 농촌 총각과의 결혼 기피 현상이 급기야 아시아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가져왔다.
국제결혼한 이주여성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곧 우리 사회 문제로 부각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 안에서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의사소통의 부족,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에 대한 부적응,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출, 인신매매 형태의 결혼, 자녀 교육 등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잠시 머물다 떠날 이주노동자들과는 처지가 판이하게 다르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오게 된 동기는 같지만 그들은 이 땅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시민권을 가지고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국제결혼한 이주여성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흐름 중에서 특히 ‘여성의 가난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가난하기 때문에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부유한 나라로 ‘결혼’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삶을 바꾸어보는 모험(?)을 강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택한 남편 역시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는 비교적 가난한 계층에 속해 있어,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가난’과 ‘여성’이라는 현실이 만나서 이루게 되는 가정은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되는지 그 현상들이 이제 우리 앞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이 땅에 잘 적응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국제결혼한 이주여성들은 농촌 지역에 많이 거주하므로 지역별로 이주여성 지원 활동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난 4월 30일을 ‘세계 이민의 날’로 정하고,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성경에서도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 9)고 언급하고 있고 나아가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신명10, 19)고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에 이주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에게 신자들만큼은 친정식구 같은 언니, 오빠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기적인 지원보다는 그들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대하는 개별적인 관계 맺기와 장기적인 지원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