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하다. 얼마나 배가 고프냐?”
“배고픈 거 이제 잘 참아요. 괜찮으니까 편히 오소서.”
“그렇게 말하니 더욱 마음이 아프구나.”
“다이어트도하고 좋구만 왜 마음 아프셔요? 진짜 괜찮아요. 아빠 오시면 맛있는 것 사먹어야지.”
버스에 몸을 싣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딸애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아내가 중태이니 곁을 떠날 수가 없고, 때에 맞추어 교대를 해 주어야 했는데 그만 일을 보다가 늦어졌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행여 기사님이 보기라도 할세라 연신 눈물을 닦는데 밀려오는 그리움이 설움으로 변하여 가슴을 저민다. 끼니때 조금 별다른 것이 있기라도 하면 서로 먹으라고 뜯어주고, 싸서 입에 넣어주곤 하여 사위가 감탄을 하는 유난히 다정스러운 가족들이다. 그런데 주부가 병석에 눕자 그만 모두가 웃음을 잃었다. 오순도순 정을 나누던 그 날이 언제였던가.
누가 ‘아내’를 ‘안해’라고 했다. 집안의 해라는 뜻이란다. 정말 해가 가려져서 온통 무거운 어두움이 뒤덮는다. 여기저기 정리를 기다리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물품들, 구석구석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주부의 손길의 위대함을 말해준다.
어느 날 복음화학교에서 ‘화해’에 대한 강의 후 조별 토의가 있었다. 남편 잘못, 아내 잘못으로 마음들이 상한다고 했다. 나의 결론, “여러분! 남편이, 아내가 건강하여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행복입니다.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가족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제발이지 건강만 회복해다오. 그동안 못 다한 것 다 갚을 기회를 주어야지.” 여기저기 주사바늘에 찔려 피멍이든 손을 고이 잡아본다.
정점길 (요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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