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나와 가족의 영혼이 쉬는 곳”
생텍쥐페리는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인간의 집의 의미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나는 발견했다”고 그의 <사막의 도시>에서 술회하고, “ 어느 집이나 지금 다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처음 어떤 사람을 사귀게 될 때, “당신은 어디서 삽니까?”라고 묻게 된다. 이때 ‘산다’(거주한다)는 말은 집 속에서만 일어나고 또한 집을 매개로 한 환경 안에서만 일어난다. 인간은 자기 집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 집이란 인간이 일에 지쳤을 때 다시 새롭게 원기를 회복하고 새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여주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주는 안식처이다. 갓난아기에게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 바로 집이다.
“내가 쉴 집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떤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있고 “내가 쉴 집이 없다”고 푸념을 한다.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집밖에서,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오늘날 건축, 특히 대도시나 신도시의 주택단지라고 불리는 곳에 가보면 시멘트와 철근을 넣어 만든 상자를 일직선으로 나열하거나 수직으로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집들은 강제수용소나 포로수용소를 연상시킨다. 사무실이 들어앉은 대도시의 고층빌딩은 강철과 유리를 사용해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얼어붙은 것 같은 차가움과 살벌함은 금방 사람의 목을 조를 것만 같다. 현대 건축의 공업화는 집을 단조롭게 만든다. 오늘날 한국의 집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기능주의적이며 비인간적이다.
도시의 위기는 바로 건축의 위기이며, 건축의 위기는 주택의 위기이다. 집의 위기는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익명인 채로 산다. 그들은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매우 이기적이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소위 ‘도시병’으로 신음한다. 도시병이란 과도한 신경소모에 의해서 생기는 일종의 노이로제, 정신착란, 강박관념, 생리장애와 정신신경장애로 생기는 심장병, 심근경색, 위궤양, 알레르기, 천식, 편두통, 습진, 피부병 등을 망라한다.
정신과 의사인 로베르 아즈망(R. Hazeman)은 “가정에서 안정할 수 없는 사람은 질병 속으로 도피해 버리게 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도시병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진통제, 진정제, 마약, 알콜, 담배의 소모율은 증가일로에 있고, 도피 수단으로써의 도박, 스포츠관람, 전자게임 등이 만연되고 있다. 도시의 대단지에서는 신경의 긴장도가 높아지기 쉬움으로 청소년 범죄 등이 일어나기 쉽다.
현대의 대도시화는 바로 생태학적 위기(환경파괴)의 근본원인이다. 밀집한 주택단지에서 함부로 버리는 생활하수는 하천오염의 원흉이다. 이렇게 도시의 위기는 자연의 위기, 인간의 위기, 집의 위기와 상관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집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 가족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할 때조차도, 그 집을 사기도 전에 나중에 그 집을 팔 궁리를 하고, 또 복덕방의 거간은 그 집을 사면 어떤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이란 언제나 팔 수 있고, 살 수 있다고 오해한다. 내 집은 내 영혼과 내 가족의 영혼이 쉬는 곳이다. 그러므로 집은 투기수단도 투자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집 판돈으로 장사해서 망하지 않은 놈 없다”고 말해왔다.
정신이 싹트고 자라는 곳
누가 하느님의 성전을 팔 수 있는가? 교회처럼 내 집도 내가 기도하고 내 영혼이 쉬는 곳이다. 유럽에 가보면 시골이건 도시건 이름난 학자나 예술가가 태어난 집이나 살던 집은 영구보존한다. 심지어 베토벤이나 슈바이처나 에스페란토가 몇 달 산 적이 있는 집도 동판을 붙여두고 기념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집에서 위대한 정신이 싹텄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대대손손 오래 머물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다. 이제 우리는 길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 도시병에 걸린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에게 편히 살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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