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하지 마라”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오 3, 2) 이 회개의 촉구는 당대, 유다인의 땅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지금까지도 유효한 선포이다.
지난 5월 14일 오후 5시 35분쯤 서울역 대합실 3층 개찰구 앞에서 한 50대 남자가 세례자 요한처럼 외쳤다. “낙태하지 마라! 5월에 지진이 올 것이다!” ‘박해’를 받으며 쫓겨난 이 남자는 두 시간쯤 뒤 개표구를 통과, 6M 높이의 난간 위로 올라가 다시 “낙태하지 마라”고 말했다.
세계에서도 악명이 높은 낙태천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귀담아 들어야 하는 예언자적 메시지였다. 문제는 이 남자가 옷을 벗고 날뛴지라 오가는 사람들이 그 메시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나체차림의 행색에 더 신경이 쓰였다는 것.
그를 체포한 철도공안에 의하면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요즘 처자들이 하도 낙태를 많이 해 하느님께서 시킨대로 이야기를 전한 것”이란다. 실로 하느님의 섭리는 묘하기가 그지없어서 누추한 인간의 몸에만 홀리지 않았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항변이 될 뻔했다.
연간 낙태 35만건
농처럼 꺼낸 화제지만, 필자의 취지는 매우 진지하다. 때맞춰 언론보도에서 눈길을 끈 것은 두 가지 기사였다.
하나는 고대의대 산부인과 김해중 교수팀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로, 이에 의하면 기혼여성 100명 중 38명이 낙태 경험을 갖고 있고 그 중 32%는 2회 이상 낙태를 경험했다. 이유는 자녀를 원치 않거나 터울 조절 등 75%가 가족계획 때문이었다. 낙태 경험자 중 미혼여성도 42%에 달한다.
우리나라 낙태건수는 연간 35만 건이란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수가 43만 8천명이니 태어난 아이의 80%가 뱃속에서부터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사에 답한 사람들의 얘기. 실제로는 150만에서 200만건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추정이다.
또 한 가지 소식은 냉동 인간배아 수만 개가 대량 폐기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법제처는 최근 생명윤리법 시행(2005년 1월 1일) 이전에 만들어진 배아들까지도 현행법을 소급 적용해 5년이 넘은 배아는 폐기하라는 유권 해석을 보건복지부에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는 그 경위에 대해 소상히 밝힐 여유도 이유도 없다. 다만 법제처의 유권 해석대로 처리될 경우 일괄 폐기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조만간 인간 배아는 질소 탱크에 초저온으로 보존돼 있던 상태에서 해동돼 상온에서 살해되고, 그 사체들은 쓰레기 버리듯이 폐기물 처리법에 의해 허가를 받은 업체가 수거해 불태워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거야말로 피가 튀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수만명의 인간배아 살해
어쩌면, 진짜로 앞서 공안요원에 의해 끌려가 구속된 50대 남자는 세례자 요한 일지도 모른다. 혹은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에제키엘 18, 30)
죄 중에서 가장 사악한 죄는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우리는 한 명씩 생명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수만 명의 인간 배아를 집단적으로 살해하려 한다.
하느님은 반드시 그 죄를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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