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놀이는 인간 존엄성 보존”
논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의식보다도 더 원초적이며 근원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엄마 뱃속에서 이미 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논다는 것은 단순한 생리 현상 이상의 것이며, 생리적 제약을 받는 심리반응 이상의 어떤 것이다. 놀이는 생명을 주창하려는 직접적 충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놀이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주변 현상으로 나타난다. 놀이는 심각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는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이란 삶의 긴장을 풀기 위한 수단이며,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서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며, 인생의 중대사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놀이는 휴식, 기분전환, 심심풀이, 장난 등으로 흔히 간주된다.
부정적 의미 많이 담겨
짧은 인생에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논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의 놀이라는 개념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담기게 된 듯하다. 논다는 말은 게으르다는 뜻이 들어있기도 하고 부도덕한 이성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가령 ‘놀고먹는다’는 말은 아주 나쁜 뜻으로 사용되고 일종의 욕설이 된다. 화투놀이, 마작놀이라고 말할 때는 도박(노름)도 일종의 놀이로 불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다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과 ‘일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놀이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놀이의 참된 의미 상실
원래 노동과 놀이는 분리되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일체화(一體化)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령 옛 사람들은 논에 모를 심으면서도 노래를 불렀으며, 노를 저으면서도 노래를 불렀고, 나무를 베거나 길쌈을 하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일하면서 놀이하고, 놀이하면서 일했다.
그러나 오늘날 불행하게도 우리는 놀이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라고 말한다.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은 고달프고 따분하며 재미없고, 마침내 사람들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쌓이게 만든다.
그래서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암울한 방법을 모색하지만, 기계적인 노동에 습관이 되어버림으로써 그리고 상상력의 부족으로 인해 비속한 짓이나 하며, 모처럼 얻은 여가도 건전하게 즐길 줄을 모른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놀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나쁜 오락에 탐닉하거나, 과음 과식을 하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천박한 짓에 몸을 내던지고 마는 얼빠진 구경꾼으로 전락하여 정신적 공허감에 빠져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종류의 놀이는 깨끗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종내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며 불건전한 죽음의 문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놀이는 대체로 명령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행위이며, 필수 불가결한 행위가 아닌 여가에서 하는 행위이며,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하는 행위로서 깨끗하고 공정한 질서와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집단적으로 행하는 행위이므로 문화형태로 고정될 수 있고 전수될 수 있는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며, 항상 긴장과 해소가 있기 마련이고 심미적 요소가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놀이는 이러한 놀이의 요소를 감안하되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상배의 책략이 놀이를 이용하여 대중을 조종하고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건전한 놀이를 할 수 있는 인간만이 비인간화를 가속화시키는 현대사회의 지배체제(즉 관료제도와 기술지배)를 변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놀이는 때로는 정치적·사회적 비판과 풍자도 할 수 있고 비꼼과 불만을 발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된 놀이는 삶에 대한 긍정과 찬미이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교적·문화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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