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집이 더 넓어졌습니다. 자꾸만 가슴이 저려옵니다. 녀석들은 자꾸만 시선을 창밖으로 보냅니다.
“바람이 센가봐.” 애써 엄마의 이야기를 피합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엄마의 말이 나오면 참았던 설움이 터질 것만 같아 약속이나 한 듯 ‘말하지 말자’고 내심 굳게 다짐을 합니다.
슬픔을 감추려는 자식들의 고운 마음이 더욱 나를 아프게 합니다. 식사 전 기도를 할 때마다 내가 먼저 목이 메입니다.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엄마의 체취를 다 씻기에는 아직도 눈물이 더 있어야 하나봅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느새 엄마의 영정 앞을 서성이며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곤 합니다. 꾸중을 들으면서도 TV앞에만 앉았던 아들도 엄마가 떠난 후 며칠이 지났어도 켜질 않습니다.
<엄마 퇴원 준비>. 집안 깨끗이 청소, 유리창 청소, 침대보 교체, 소파 먼지 털기, 뒷 베란다 정리….
거울에 붙여둔 딸의 메모입니다. ‘암담하다’라는 말이 이처럼 절실하게 다가올 수가 없습니다. ‘말아톤’ 영화를 보고는 아들 생각에 한없이 울던 아내가 어찌 눈을 감았을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그마한 항아리도 다 못 채우는 초라한 뼈 조각으로 돌아온 마지막 모습입니다. 허무라는 단어의 의미가 깊이 새겨집니다.
사도신경에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을 믿으며’라 했습니다. 죽은 자와 산자의 만남도 있습니다. 서로 돕고 기도할 수 있고 서로 공을 나눌 수 있다니 더 없이 커다란 위안입니다. 오늘의 이별이 끝이 아니고 내일의 만남이 또 있다는 희망은 슬픔에서 깨어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어줍니다.
이런 때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느님,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필자 정점길(요한)씨의 부인 이인숙(58.마리아) 여사가 오랜 투병 끝에 지난 5월 19일 선종하셨습니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정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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