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평소 기도 생활화를
8년 전부터, 수업이 없는 날이면 건강을 위해 한 주일에도 서너 번씩 동네 인근의 수리산 슬기봉을 오른다. 거창한 등산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저 생각이 동하면 작은 물병 하나 챙기고 모자 쓰고 동네 마실가듯 산을 찾는다. 오르고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이라야 한 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 하이킹 수준이지만 경사가 심해 운동량은 만만치 않은 편이다.
그 흔한 배낭도 지팡이도 없는 단출한 산행 중에 나는 가끔씩 묵주를 들고 기도하면서 산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자매님들을 만난다.
당장이라도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나지만 인사나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같은 신자라고 반가워한다. 이분들은 운동도 하면서 기도도 드리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가던 길을 재촉하게 된다. 수리산에는 이런 자매님들이 여럿이라서 이렇게 마주치는 이들이 같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분들이다.
이들 자매님들의 묵주 기도는 마치 “나는 천주교 신자이며, 지금 기도중입니다”라고 등산객들에게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다가오는 이들의 존재는 마치 ‘네 형제와 이웃을 통해 네 신앙을 돌아보라’는 주님의 음성같기도 하다.
이러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쭈뼛쭈뼛하며 성호를 긋는 나로서는 언제쯤 이런 ‘용감무쌍한’ 자매들의 몸에 밴 기도생활을 본받을 수 있을지 반성의 기회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리문답을 달달 외어 세례를 받았으니 햇수로 50년이 된다. 지난 50년간 신자로서 살아온 나의 신앙과 기도생활은, 앞서 애기한 자매들이 100점이라면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준다하더라도 아마 2, 3점이나 될까 말까 할 것 같다. 대학생 시절 가톨릭학생회 일을 몇 년 했을 뿐이고 지금까지도 본당에서의 봉사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생각해온 이기적인 인간임을 고백하고 성찰한다.
지난 10여 년간 매주 주일 미사만은 빠지지 말자고 결심하고 실행은 해오고 있지만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성당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나의 신앙생활이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본당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둘에 그친다. 이런 나의 신앙과 기도 생활에 비추어 볼 때 산행에서 만나는 자매들의 기도 생활에 찬사를 드리게 되는 것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오가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묵주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대체로 거의가 자매님들이다. 물론 형제들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 곳, 드러나지 않는 시간에 이들 자매님들 못지 않은 기도생활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형제님들께는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아무래도 남성 신자들보다 여성 신자들의 기도와 신앙 생활이 좀 더 깊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런지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껏 나는 기도하는 남성 신자들을 산에서나 다른 곳에서도 만나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극히 예외적이면서도 다행스럽게도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법학과 Y교수를 알고 나서는 그의 기도생활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Y교수는 수업과 연구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묵주 기도를 드린다. 나처럼 산을 오를 때나 전철에서는 물론이고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그의 손에는 영락없이 묵주가 들려있다.
심지어 10여일 전에 함께 참석했던 결혼식 중에도 묵주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정도니 기도에 대한 그의 집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도 매일 수백단의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도중에도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지 않게 하면서 묵주알을 계속 굴리니 ‘묵주기도상’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훌륭한 대상 후보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Y교수와 내가 만났던 자매님들, 그리고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신심 깊은 많은 형제님들. 이들은 1975년에 발표된 교황 바오로 6세의 권고인 ‘현대의 복음 선교’ 21항에서 언급된 ‘참다운 복음 선포자’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과 비교하면 나는 초라한 껍데기뿐인 그야말로 엉터리 신자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사실이다.
‘앞으로 분발해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신앙과 기도 생활을 해야지.’
이런 다짐이 무색해지지 않게 오늘은 묵주를 꼭 쥐고 산행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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