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절제한 흥분 경계해야”
“스포츠는 영웅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창안해 낸 또 하나의 신흥종교이자 소통의 마당이요 꿈을 실현하는 무대”라고 프랑스의 시인 까띠 라뺑은 <시인세계>라는 잡지에서 말한 바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한국인의 감격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함께 어우러져 응원을 하며 온 국민이 하나 된 기쁨을 누렸다. 축구라는 심심풀이놀이가 실제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를 정신적 피난처나 위안의 대상으로 여기면 여길수록 인기 있는 운동경기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더 큰 허탈감에 빠질 수 있다.
대중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정상배의 음험한 술책과 대중매체의 선동이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축구경기 자체가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이며 빠른 속도의 경기와 변화무쌍한 상황, 거친 몸싸움, 인간의 동물적 공격성과 욕망을 자극하고, 상대편과 대항하는 우리 편을 통해 집단화하기 쉽고, 승부욕을 자극하고, 관중을 열광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의 역기능
오늘날 스포츠는 기업화되고 있고,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준열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어떤 스포츠는 선수를 혹사하고 선수의 인권을 유린하고 선수를 상품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심판 매수와 선수들의 약물중독 등 온갖 비인간적인 만행을 조장하기도 한다. 고도의 기술 연마는 때로는 선수의 안전을 소홀히 하기도 하고 선수를 대중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가령 독재자들이 좋아하는 집단체조, 특히 카드섹션 등은 인간을 기계처럼,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한다. 일부 극소수의 운동선수들은 치부(致富)를 하기도 하나 많은 운동선수들은 몸과 마음을 상하기 일쑤이고 그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도박처럼 되어 가고 있다. 도박이 인간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스포츠의 순기능은 연대의식함양, 휴식, 긴장이완과 재창조(recreation)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스포츠는 오히려 저열한 경쟁심리를 부축이고 긴장을 유발시키며 집단이기주의를 선동하고 연대의식을 파괴하고 종내에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예컨대 소위 훌리건의 열광과 행패와 선수들과 구경꾼들의 음주벽과 마약흡입 등은 우연한 작태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열광적인 것과 인간의 품위는 화합할 수 없는 것이며, 열광주의(Fanaticism)란 오래 존재할 수 없어서 그 자체로 자멸하고 만다. 어떤 깃발 아래, 어떤 구호 아래 모이라는 말은 대중에게는 잘 먹혀 들어간다. 대중들은 자기네들과 결탁한 사회의 이념에는 열광적으로 찬양하며, 그렇지 않은, 이해관계가 없는 세계를 적으로 보며 극도로 증오한다.
스포츠 도박도 금물
스포츠가 사고의 포기나 현실도피가 될 때 그 민족과 문화는 멸망한다. 왜냐하면 현대 문화의 몰락, 죽음의 문화의 근본원인은 현대인의 목적의식 상실, 사고의 포기, 즉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상업주의와 결탁한 사회가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스포츠를 이용하여 정상배들이 이성적인 사고와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고 인간을 함부로 흥분시키거나 조종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손상을 가져오는 스포츠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계를 하고 절대로 방조하거나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행심을 조장하는 스포츠와 상관되는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축구응원단인 ‘붉은 악마’는 전국을 휩쓸다시피 하였다. 붉은 피를 연상시키고 황소를 흥분시키는 시뻘건 티셔츠를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도 입고 거리를 쏘다녔고, 이제는 소녀들까지도 숫제 빨간 뿔을 머리에 꽂고 길을 쏘다닌다. 스포츠 응원자를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무심하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인정사정을 몰라보는 것을 악마와 같다고 말한다. 악마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다. 붉은 악마는 이성을 마비시킬 것만 같고 불길한 느낌마저 준다.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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