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개신교 축구시합
다시 월드컵이다. 이번에는 새벽경기가 많아 응원하기가 좀 고달플 것 같다. 그래도 어쩔건가. 누가 시켜서 하는 짓도 아닌데.
가톨릭팀과 개신교팀 사이에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모였고 마침 좀 한가하던 예수님도 ‘민간인’ 복장으로 나섰다. 전반 10분 가톨릭팀이 먼저 골을 넣었다. 신자들이 환호했고 예수님도 환성을 올렸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개신교팀도 한 골. 개신교 신자들이 기뻐 일어섰다. 예수님도 박수를 보냈다.
그때, 한 노신사가 예수님을 몰라 뵙고 어깨를 툭툭 쳤다. “당신은 도대체 어느 편입니까?” 예수님 왈, “나는 어느 편도 아니고, 그냥 축구 보러 왔는데요.” 노신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 당신은 무신론자시구만.”
웃자고 한 소리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축구는 교회와 인연이 많다. 정식 축구가 영국에서 시작됐다는데, 그 이전부터 유럽에서는 유사한 경기가 있었고, 사순절 직전에는 대규모 시합이 열려,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교구마다 클럽이 만들어졌는데, 영국에서는 교회 소속이 전체의 25%나 차지했다고 한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는 선교사들을 통해 축구가 보급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축구에 대한 열성이 높았다.
교회와 축구의 관계는 이번 본선 진출국의 종교 분포에서도 잘 나타난다. 32개 참가국 중에서 가톨릭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가 무려 8개국. 폴란드, 에콰도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다. 가톨릭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인 브라질도 80%가 넘고, 코스타리카가 76%, 크로아티아도 76.5%나 된다. 스위스(49%), 네덜란드(31%), 앙골라(38%), 체코(39%)도 신자 비율이 꽤 높다. 참고로 우리나라 신자율은 9.3%이다.
말, 행동이 과한 사람을 일러 “오버한다”고 한다. 축구와 관련해서도 종종 오버를 한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니 용서할 일이지만, 일상을 접고 축구에 빠지는 사람도 생긴다. 사실 축구의 매력은 오버할 만하다. 열광의 강도는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축구는 신흥종교(?)
때로 축구장은 거대한 신전처럼 보이고. 선수와 관중은 광적인 신도들의 상태와도 유사하다. 쿠베르탱은 근대적인 김나지움(gymnasium)을 구상하면서 종교적 사원을 염두에 두었고 데이빗 샌손(David Sansone)은 스포츠를 “신체 에너지의 의례적인 희생제의”라며, 그 제물을 ‘신체 에너지”라고도 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인 프랭클린 포어는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에서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오늘날 지구촌에서 축구는 새롭게 떠오른 신흥종교라고까지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실제로 종교의례가 이뤄지기도 한다. 브라질의 축구 서포터들이 토속의상을 입고 토템적인 주문을 외치는 것도 그 한 부류이다.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는 더 두드러진다. 2002 월드컵 때 세네갈팀의 주술사가 골대에 마법의 가루를 발랐고, 프랑스팀은 결정적인 슈팅이 두 번이나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불운을 겪었다.
인류의 일치와 화합
이런 열광을 충동하는 가장 큰 동기는 ‘편가르기’이다. 내 편 네 편을 갈라놓고 11명의 전사가 대리전을 벌인다. 예수님처럼 이 편 저 편을 모두 응원해야 한다면 그 재미는? 반감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양쪽을 다 응원했을까.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스포츠는 인류의 일치와 화합의 잔치라는 당부를 다시 확인하고 싶으셨을께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또는 돈벌이에 혈안이 돼 상업주의에 오염된 스포츠에 대해 부드럽게 경종을 울리고 싶으신게다.
최선을 다해 싸우되,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잔치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들이 많은 때, 예수님은 축구를 통해서 인류가 서로에 대한 관용을 배우길 바라실지도 모른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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