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만과 생명의 현실”
생명에 윤리가 붙었다. ‘이름’하여 생명윤리다. 생명이란 단지 생물학적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한 힘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생물학적 존재에 무한한 가치가 더해진 말이다. 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윤리적이어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생명’은 이미 그 자체에 윤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윤리’를 붙였다. 생명에 대하여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오죽 지키지 않았기에 윤리라는 말을 달아야 했을까?
혼전에 임신한 아이라고, 원하지 않았는데 생긴 아이라고,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낙태를 한다. 2005년 한국에서는 하루에 평균 1200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960명의 아이가 낙태로 죽어 갔다. 이는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이루어진 낙태 시술 실태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결과이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가지가지 이유를 달고 낙태라는 방법으로 죽어갔을 것이다.
1200명 출생 960명 낙태
낙태는 여성에게도 치명적이다. 때로는 낙태 과정에 자궁이 천공되어 목숨이 위태롭기까지 한다. 자궁은 만신창이가 되어 염증이 생긴다. 난관이 막히고 자궁내막이 서로 달라붙는다. 골반에 염증이 생긴다. 난관이 막히고 골반염에 염증이 생기는 것은 불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낙태는 불임의 전초기지이다.
불임은 고쳐야 할 질병이란다. 불임을 극복하기 위해 시험관아기를 시도한다. 다른 여자의 난자를 사고 다른 남자의 정자를 산다. 차가운 시험관 속에서 난자와 정자를 인공적으로 수정시키고 키운다. 아이를 원하는 엄마의 자궁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돈을 주고 대리모의 자궁을 빌린다. 착상이 잘되라고 인공 수정란을 대여섯개 자궁에 집어넣었다. 예상치 않게 대여섯개가 모두 자궁에 착상되었다. 너무 많은 아기는 돈이 많이 들어 키우기가 곤란하다. 하나만 남기기로 결정한다.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되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한다.
임신 된 아이에게 유전적인 질병이나 기형은 없는지 유전자 검사를 한다. 결과는 염색체 이상이란다. 병이 있는 아기는 싫다. 기형인 아기는 더 싫다. 병이 있거나 기형인 아기는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 태어나도 아기가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힘들 것 같다. 이번에는 그냥 안 낳기로 해야겠다. 없던 일로 하자. 다음에 또 시험관아기를 시술하면 되니까. 낙태 아니 유식한 말로는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의료진에게 의뢰한다.
난치병을 연구한단다. 난자를 팔 여성을 구한다. 여자는 돈이 필요하다. 내 몸에는 난자가 수백 개란다. 뭐 아이는 하나나 둘 정도 낳거나 아니면 안 낳을 수도 있으니까 수백 개중 난자 몇 개 정도는 팔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돈도 벌고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연구에 쓰여진다니 기꺼이 난자를 팔자. 과배란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나면 구역질이 나고 토할 것만 같다. 그래도 며칠은 더 맞아야 한단다. 난포가 성숙되었단다. 난자 채취일이 결정되었다. 난자 채취를 위해 수술대 위에 산모처럼 누웠다. 긴바늘이 몸속을 뚫고 들어와 잘 길러진 난자들을 빼내간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다.
빼내어진 난자는 인위적 조작을 거쳐 배아가 된다. 배아는 배양액에서 파괴될 날을 기다리며 자란다. 적당히 자란 배아는 생명이 아니라고 날카로운 바늘로 기워도 상관이 없단다. 더 많이 난자를 사서 배아를 만들고, 배아를 더 많이 파괴해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자랑이다. 더 많이 배아를 파괴하는 과학자는 더 훌륭한 과학자란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작년도에 1.08로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일 낮다고 한다. 2005년의 낙태 건수는 34만 2천여 건으로 이 또한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기록이다. 연일 저출산 해소를 위한 정책이 발표 중이다. 이대로 저출산이 지속되다가는 먼 훗날에는 이 나라가 없어질 것이라고 난리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낙태에 대한 두려움이나 대책은 여전히 없다. 비참한 생명의 현실에 대한 이러한 예는 끝이 없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것 같지가 않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
이러한 비윤리적인 상황은 인간이 생명을 주무르려는 오만함에서 초래된 것이다. 작금의 ‘생명’에 대한 이런 비윤리적인 상황은 생명에 윤리를 붙이고 또 거기에 윤리를 붙여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지상의 모든 생명을 주무르려는 오만함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시고, 이 땅 위에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심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늘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제가 믿나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한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시인하는 고백이다. 적어도 가톨릭 신자는 그것이 진정한 생활의 고백이어야 한다.
김명희 (로사, 마취전문의·생명윤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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