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의 보호자 대기실은 좁은 소파가 유일한 쉼터이다. 그것마저도 한 칸을 차지하고 몸을 누일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졸다가도 울려오는 인터폰 신호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님 보호자께서는 중환자실로 오십시오.” 이 한마디면 대개는 끝장이다. 잠시 후에는 의례 비통한 절규가 병실 문틈을 새어나온다.
여명에서 8시30분까지는 참으로 긴 시간이다. 병원 지하에 마련된 작은 성당의 문이 열리는 시각이다. 차라리 끼니를 굶어도 괘념치 않는다. 스러져 가는 가족의 목숨이 안타까워 예수님의 옷자락이 찢어지기라도 할세라 간절히 매달리고 싶은 절박함에 감실안의 예수님을 찾으려는 시간이다.
굳게 잠긴 성당 문 앞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개신교 예배당이 있다.
넓은 공간에는 벌써 몇몇이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 이 곳에서라도 하느님을 찾아보자고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댄다. 그러나 감실이 없는 교회당은 마치 주인이 없는 빈 집만 같아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고통도 때를 가려 찾아왔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니 남의 집 예배당에 앉아 별별 공상을 다 해본다. 우리 성당의 감실 문을 쇠사슬을 둘러 잠가본다. 경보장치도 해본다. 도둑이 들면 더 훔쳐 갈 것이 무엇이 있을까 두리번 거려본다. 한 마리 어린 양의 비참한 심경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성당 문을 열 시간, 감실 앞에 앉은 여인이 더욱 슬프게 한다. 몇 시간 전 10층 엘리베이터 앞 통로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던 바로 그 여인이다. 아직도 눈물은 끝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계시다가도 날이 저물면 굳이 오리쯤 떨어진 달동네 베타니아로 찾아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셨다는데….
정점길 (요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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