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이 쉬운가, 통일이 쉬운가?
“전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은 그렇게 불린다. 올림픽보다 더 응집력있게, 세계인의 눈과 귀를 축구공 하나가 몰고 다닌다. 우리는 지금 독일 월드컵의 주역이 되어 그 소용돌이 속을 함께 부유하고 있다. 골 하나에 울고 웃는 날들이 장마철 내내 이어질 것이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나도, 그래서 광적인 애국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도 우리나라의 경기는 마치 무슨 의무처럼 보게되었다. 그리고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하게 내버려두질 않는 신문이며 방송 덕에 월드컵을 기웃거리다가 나는 개최국 ‘독일’을 들여다 본다.
4년 전 우리나라 거리를 붉은 악마와 태극기가 점령했듯이 지금 독일은 삼색기의 물결로 일렁인다. 4년 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은 1990년 통일했다. 세계대전의 주범이었기에 우리처럼 동서가 분단되었고 한 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다른 한 쪽은 공산주의 체제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베를린 장벽을 걷어내고 통일을 이뤘다. 그리고 그해 독일은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 통일의 기쁨과 통일된 독일의 힘을 세계만방에 신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16년, 이제 독일은 월드컵 개최국이 되어 있다.
4년 전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공동개최했다. 반쪽짜리 축제였다. 그때 나는 우리가 독일처럼 20세기 안 쪽에서 통일을 했었다면 월드컵을 단독으로 개최하고 개성에서도 평양에서도 공을 차면서 통일된 민족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진정한 이벤트가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독일이 그렇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소비에트 군대를 몰아냈지만 서독의 시장경제에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통일은 빈부의 격차, 옛 동서독 주민들 간의 이질적인 정서와 반목으로 곤란을 겪었고 막대한 통일비용으로 경제적 내홍이 있었는가하면 전쟁에 대한 원죄는 오래도록 독일 국민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독일은 지금 월드컵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별 대항으로 치열한 각축이 이뤄지는 녹색 그라운드는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광기에 가까운 국가주의를 연출한다. 서울시청 광장을 뒤덮은 붉은 인파가 왠지 모를 섬뜩한 전율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듯이 이 정체모를 국가주의는 자칫 파시즘을 연상시킬만큼 강렬한 것이다. 독일은 전세계에 대놓고 삼색기로 옷을 해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하나된 국가의 국민임을 만끽하고 있다.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번 월드컵은 독일 통일을 완결형으로 만들어가는 이벤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힘들고 지난한 역사를 살아 온 나라의 국민일수록 그 역사의 수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강렬할 것이다. 독일은 이제 얼떨결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 아니라 전세계인의 눈과 귀가 모아진 그라운드에서 하나된 민족의 기쁨과 자부심을 맘껏 발산하고 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우승보다 이번 월드컵의 하나된 독일인의 응원열기는 역사적으로 훨씬 가치있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제 세계인들은 독일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통일과정의 고난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독일은 다시 유럽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보면 부러움이 없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궈냈다. 개최국의 프리미엄을 생각하더라도 월드컵 4강은 우리에게 있어서 기적이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우리나라 전체를, 붉은 악마로 화한 국민 전체가 에워싸고 발산한 기가 이뤄낸 기적. 11명의 선수가 아니라 4천만 국민의 파이팅이 만들어 낸 기적.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세계 4등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하나가 아니고 우리는 여전히 전혀 극적이지 않은 냉혹한 분단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붉은 악마들에게 물어보자. 통일이 쉬운가, 월드컵 4강이 쉬운가?
내 생각에는 단연 통일이 쉽다. 월드컵 4강에는 국민의 하나된 힘 뿐만 아니라 상대적 게임의 변수가 개입한다. 둥근 공이 부리는 재주가 사람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 국민들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외치면 되는 일이다. 매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이고 어디고 할 것 없이 모여서 떠들고 외치면 아무런 변수 없이 통일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기가 열리는 날, 깃발 아래 붉은 옷을 갈아 입고 서서야 하나가 되는 그런 하나는, 언제고 둘이 되고 셋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가난한 자와 부자로 다시 갈라설 수 있다. 나는 그런 하나가 아니라 땅도 이름도, 하늘도 바다도 하나가 되는 그런 하나가 되고 싶다.
‘귀(耳)가 “나는 눈(目)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귀가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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