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법 개발돼도 ‘그림의 떡 ’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배아복제나 배아줄기세포 생성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늘 희귀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끌어다 붙인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 뒤로 수조원의 경제 효과,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 등의 미사여구를 그림자처럼 가져다 붙인다. 지난 봄 황우석씨의 맞춤형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도 한 언론사는 맞춤형배아줄기세포의 난치병 치료 가능성과 경제적 가치에 대해 보도하면서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2015년쯤에 상용화가 되면 파킨슨병이나 고혈압 등에 사용하여 33조의 경제효과가 있다’라고 황당한 주장을 했다. 과연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희귀난치병 치료를 해서 환자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조원에 이르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정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희귀난치병이란 몇만명 또는 몇백만명 중에 한명이 생길까 말까하는 드문 질병이거나, 드물지는 않더라도 현재 의학의 수준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 희귀난치병 질환의 종류와 환자 수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모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400∼500여종의 희귀난치병 환자가 70만명 내지 80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단지 89종의 질환만이 정부로부터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수백 수천가지의 희귀난치병은 그 원인과 병리가 다 다르고 때로는 그 원인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인조차도 모르는 질병들 모두에 배아줄기세포가 치료를 다해 줄 수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단지 일부 질환의 경우 그 병태생리로 보아 가능성만을 점칠 뿐이다. 물론 ‘맞춤형배아복제줄기세포’가 존재하지도 않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은 그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지만….
대개의 희귀병은 대부분이 난치병이다. 증상이 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의 발생이 드물어 병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아 치료방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방법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가 병이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만일까? 병이 적다 못해 희귀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연구를 할 기회가 적다는 것과 함께 연구해서 치료방법을 발견해도 그 치료방법을 사용해줄 미래의 시장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논리에서 치료제로서의 시장이 작다는 것은 결국 투자에 대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런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상업연구소나 제약사들이 투자를 할까? 실제로 요 몇년 동안의 논란 과정을 살펴보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의 어디에도 제약사나 대기업은 없었다. 대기업이나 상업주의자들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만큼 가능성도 적고 경제성도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시장의 규모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많이 볼 수 있게 하기위해서는 한가지 방법 밖에 없다. 독점과 폭리이다. 그들이 말하는 33조 원이라는 돈은 누가 내는 돈일까? 우리일까, 환자일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도움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등을 통해 자주 접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적 의료현실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중한 병에 걸렸다. 건강보험이 된다 한들 치료비가 엄청나다. 일회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평생을 병과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희귀난치병이 대개가 다 그렇다. 처음에는 저금을 찾아 쓴다. 저금도 바닥이 난다. 주위에서 십시일반 도와준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땅이 있으면 땅을 팔고 집이 있으면 집을 판다. 팔 땅이나 집이 있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치료비가 떨어지면 빚을 내든지 집으로 가든지 둘 중에 하나다. 아마도 교회이름의 병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 때문에 집으로 간다. 지금은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다. 하지만 병은 서서히 진행된다. 돈이 없어 병이 진행되고 죽음을 기다리는 이 상황은 안락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새로운 경제적인 가치 운운하는 자들이 개발한 비쌀 수 밖에 없는 치료법은 과연 누구에게나 쓰여 질 수 있을까? 아마 그림에 떡이 십상이다. 치료 방법이 있는 것과 치료가 가능한 것은 다른 문제이다. 경제적인 가치 창출을 전제로 한 치료방법은 돈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꿩먹고, 알먹는’ 것이 아님은 적어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확연하다.
환자의 고통을 전제로 경제적인 가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이지 않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순수해야 한다. 연구의 성과가 비록 경제적 가치를 주지 않는다하더라도 그것이 인류에 미칠 영향이 크다면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경제적으로 손해가 나더라도 아니 돈을 들여서라도 해야 한다. 고통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을 가질 때 돌아보는 이 현실은 윤리의 부재이다.
지금 이 순간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지금 내가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복음 7장 21절)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은 아닐까?
김명희(생명윤리학 박사, 마취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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