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공동선 증진 위해 신자 중심의 가톨릭운동 절실
얼마 전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가톨릭사회과학연구회에서 의미있는 학술회의를 연 적이 있다. 지난 6월초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가톨릭교회와 시민운동’을 주제로 열린 회의가 그것이다. 이 회의는 새로운 시대에 가톨릭적 대사회 실천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모처럼 시민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는 교회 안팎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가톨릭적 사회 참여 방식을 두고 진지한 고찰의 시간을 가졌다. 비슷한 고민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없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지만 교회 내부는 물론 타 종단 전문가 등 교회 외부 인사들까지 참여해 ‘가톨릭적’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주고받았던 적은 별로 기억에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천주교의 대사회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널리 알려진 대로 격동의 시기 우리 교회는 ‘정의’와 ‘인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이를 통해 불의가 넘쳐나던 사회를 정화하고 복음화를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부여받은 도덕적 권위는 바로 인간 존엄성과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회 참여와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음에 따라 형성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교회의 대 사회 참여, 또는 신자들의 사회운동은 적잖은 갈등에 휩싸이기도, 그로 인해 표류하기도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1995년 북한의 대홍수 이후 꾸준히 전개돼오고 있는 범교회 차원의 대북 지원과 민족화해운동도 이런 갈등과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횡행하던 논리를 그대로 갖다 댄 ‘퍼주기 논란’이 그것이다.
이처럼 신자들의 사회 참여는 교회적인가 비교회적인가, 또는 정치적인가 비정치적인가 등의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논거들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가톨릭적 대사회 실천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토론의 주된 결론은 한국 가톨릭교회도 새로운 사회 시민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시작이 늦었다는 자기성찰을 걸러낸 것이 더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행사를 통해 새롭게 부각된 가톨릭적 시민운동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적극적 수단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회복음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종교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종교 정신과 이념을 큰 무리없이 실천하고 있는 ‘경실련’이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같은 단체의 시민운동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들 단체들은 대외적으로 자신의 교리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개신교의 사회적 실천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사회적 실천을 지지하는 층이 개신교 신자뿐 아니라 비종교인은 물론 타종교인도 적지 않다는 사실은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교회가 한번쯤은 심각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다.
사회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공동선’ ‘사회 정의’ 운운하는 것은 손대지 않고 코를 풀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세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논란과 갈등이 두려워 사회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자족적인 공동체에 머물러 복음화의 어장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갈등이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표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점은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갈등을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통합하면서 합의를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상호 갈등하고 경쟁하면서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합리적 대안으로 조직되는 과정을 거쳐 일정한 합의를 이뤄나갈 때, 그 공동체는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사회 속에 공동선을 증진시켜 나가기 위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중심이 된 가톨릭운동의 필요성이 더해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신자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고 확산되도록 하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평신도사도직운동이 활발하다고 하지만 한계도 뚜렷해 사회운동에 현저히 취약하다는 한 논평자의 발표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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