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태풍‘에위니아’가 많은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지만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태풍은 2000년 9월 중순 한반도를 강타한 ‘샤오마이’이다.
어머니의 장례 미사 날 새벽 4시,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태풍은 397㎜의 폭우를 동반하며 우리 지역을 막 통과하고 있었고 온 도심의 하늘은 강풍에 넘어진 나뭇가지들과 간판, 그리고 온갖 것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으며 사람들은 폭우 속에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장례일정을 연기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어 기상 특보를 보며 기도하였다. 그 시간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 이장 작업이 교우 장의사 사장님의 지휘로 강행되고 있었기에 우리로서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퍼붓던 비와 강풍은 날이 밝아오면서 기적처럼 잦아들었다.
3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눈에 펼쳐졌다는 그 영롱한 무지개 저편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하고 수없이 들려왔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평생 간직한 어머니는, 그 후 홀로 갖은 고생에도 단 한번도 좌절하지 않고 우리 4형제를 강하게 키워내셨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중1, 고1이었던 나와 누나는 혼인을 하였으며 아홉 살이었던 남동생은 신부님이 되었고, 유치원을 다녔던 막내 여동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91년 대구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30년만에 같은 묘에 합장을 하는 그 순간, 마치 어머니가 수줍은 얼굴로 “보세요, 내가 잘했지요?”하고 말하시고 아버지는 “당신 참 장해, 수고했어요”하고 손을 잡고 함께 웃으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 가정을 통해서만 하더라도 실로 가늠할 길 없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으로 풍성하게 내려주신 은총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아침이다.
이영구 (ME 대구협의회 사도직분과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