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야기이다. 당시만 해도 겨울이면 동네 언저리 좀 널찍한 웅덩이마다 물을 채워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서는 동네 꼬마들을 불러모으곤 했다. 특별한 놀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 울퉁불퉁 곳곳에 돌이며 잡초더미들이 뭉쳐져 있던 얼음바닥이었지만 스케이트나 굵다란 철사줄로 만든 썰매며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충분한 놀이터였다. 문제는 입장료를 받았다는 것.
동네 골목만 휘젓던 내게 스케이트장은 사치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경대 위에 잔돈이 놓인 것을 보았고, 그것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가슴을 졸이며 돈을 들고 튀어나와 스케이트장에서 해질녘까지 종일을 놀았다. 그날 저녁 집에 가서 나는 ‘디지게’ 맞았다.
지금 생각해도 맞아도 싸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그 돈은 삼형제를 포함한 우리 다섯 식구가 먹고 살 쌀을 사야 할 돈이었다. 생전 매질이라고는 모르던 어머니가 불같이 화를 낼 만도 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 일이 가슴에 사무치시는지 조금만 애틋한 일을 당하시면 잔잔한 얼굴로 그때를 후회하신다.
내게 그 기억은 두 가지 느낌으로 남는다. 하나는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다. 물론 어렸을 때 일이고 분별이 없던 어린 아이의 행동이었기에 양심의 가책과는 종류가 다르다.
다른 하나는 나를 매질하면서 얼마나 당신 가슴이 아프셨을까 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된 깨달음이다. “그때 너를 왜 때렸을까. 얼마나 스케이트가 타고 싶었으면 쌀팔 돈을 가져갔을꼬” 하며 지금까지도 아픔으로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안쓰러울 뿐이다.
학생을 무려 200대나 매질한 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이가 그 뭇매를 어떻게 기억할까. 엉덩이에 피떡칠을 한 아이가 그걸 사랑의 매로 기억할까. 매를 맞고 되풀이되는 통증을 느끼면서 가슴에 품었을 증오를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학생이 개인가? 군사 독재 시절의 학교, 폭압적인 군대 문화가 학교 전반을 지배했고 온갖 종류의 체벌이 다반사로 행해지던 시절에도 200대는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정황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기에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필자는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은 결코 정상이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아무리 독하고 악하다고 해도 어떻게 무방비 상태의 학생을 200대씩이나 매를 칠 수 있는지. 병적인 심리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에 대해 이성적인 논의를 할 생각 조차도 없다.
이미 해당 교사의 가혹한 체벌은 일상화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행위가 어떻게 제재가 되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더 크고 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책임은 그런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을 방치한 학교에 있다. 그런 학교를 방치한 교육 당국에 책임이 있고, 우리 교육계의 현실과 그런 현실을 방조한 우리 사회와 모든 어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체벌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논란은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체벌의 효과를 실제로 체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하나의 전제를 갖는다. 사랑과 애정.
단순화시켜보면 체벌 논란의 핵심은 “사랑과 애정을 갖고서도 때려서는 안된다”는 반대와 “사랑으로 매를 드는 것은 용인될 수 있다”는 찬성론이다. 하지만 찬반 어느 것도 사랑이 없으면 그 주장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사랑 없는 매질은 폭력이고 범죄이다.
여기서 필자가 생각하는 핵심은, 때리다 감정이 앞설 가능성이 있다면 매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이니까 매질을 하다보면 당연히 감정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결론은 때리지 말자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책 제목이 떠오른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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