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절검’하고 백성에 봉사할 줄 아는 지도자 되길
해방이 되고 남쪽에는 미 군정이, 북쪽에는 공산정권이 각각 지배권을 구축하던 시기였다. 남쪽에는 북에서 공산주의의 토지수용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내려온 월남자가 많아지고 온 사회는 필요 이상의 반공주의와 극우집단의 득세가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 이었다.
이 때 우리나라에는 ‘이북오도청’이라는 것이 있었다. 북진통일을 해서 북쪽을 점령하면 이북의 어느 도지사는 누가 하고 어느 시장은 누가 하고 면장은 누가 한다는 등등의 가상 종합행정기구가 이북오도청이다. 분단이 이리 오래 길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당시 정황으로 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있지도 않은 감투를 쓰기 위한 권력투쟁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그의 회고록 <대화>에서 이 당시 풍경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월남자인가 아닌가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었고 기독교인인가 아닌가, 사상적 입장이 무엇인가 하는 매카시즘적 색깔시비도 있었다. 그래서 감투가 정해지고 ‘어이 김군수, 아이구 면장님’ 이러면서 벼슬행세를 했다고 한다.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일이다. 유비가 당시 난양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모시기 위하여 그의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가 간청하여 겨우 승낙을 얻었다. 이 일은 인재를 알아보고 끈기와 초지일관한 정성으로 제갈량을 등용한 유비의 용인술을 높게 사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제갈량의 사람됨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일은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성어가 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감투를 쓴다는 것은 어느 집단의 앞일꾼이 되어 그 집단이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렇고 장관이 그렇고 국회의원이 그렇다. 사장이 그렇고 교장이 그렇다.
얼마 전에는 부총리가 학자적 양심 문제를 지적당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물러날 것을 요구받았으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버텨 우리를 우울하게 한 일이 있다. 또, 새로 교육감이 된 어른이 취임 열흘이 못되어 부정선거로 선관위의 소환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북오도청의 웃지 못 할 일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만큼 감투를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그 좋은 예가 군대다. 너도 나도 높은 자리를 원하다 보니 별자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가 되어버렸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서 별을 못달면 아예 바보취급을 받는다.
베트남을 갔을 때 호치민 주석이 집무했다는 집무실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검소함과 대중적인 소박함을 접하면서 30년 넘게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지도자로 일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어느 날 문득 지하철을 타거나, 어떤 지도자가 농촌을 찾아와 모내기 논에 몇 시간 발을 담그는 것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었다.
호주석의 책꽂이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가 꽂혀 있었고, 가이드의 설명도 호주석이 평소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고 했다. ‘공산당선언문이 아닌 목민심서라니!’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서가에는 어김없이 목민심서가 꽂혀있고 여러 사람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목민심서를 꼽는 것을 보았다. 같은 책을 감명 깊게 읽고 하는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은 각자가 받은 감명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일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2백여 년 전에 쓰여진 목민심서는 목민관의 자세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목민관이 될 자질로 청렴절검의 생활신조, 백성본위의 봉사정신을 강조했고, 목민관이 되면,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말고 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민을 보호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이 시공을 초월해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호치민과 우리나라의 부패한 권력자에게 동시에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의 행실과 책의 내용이 가지는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와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 그리고 사회주의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전해 준 덕목은 변함없는 지도자의 철학이다. 감투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철학 없이 천박한 이기주의와 행세주의가 앞 선 우리의 앞일꾼들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 유행하는 대안학교라도 하나 만들어 이 분들께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성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각 집단에서는 더 높은 감투를 쓰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선출직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법이 엄격해지면 질수록 더욱 교묘하고 치밀하게 부정과 과열열기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백성들에게는 마음에 담을 지도자 한 분이 없다.
백성은 우매하고 지도자는 타락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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