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일컬어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라고 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일치를 가장 충만하게 드러내는 가정은 단숱히 우연적인 공간 안에서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서 사랑과 생명을 더욱 확고히 하고 나아가 또 다른 다양한 관계를 창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종의 제도로서의 가정은 사적인 것에서부터 공적인 것, 사회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많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보다 완전한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서나, 공동체적이고도 사회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가장 작은 기초 단위의 공동체이며, 이 작은 공동체의 기초가 곧 사랑과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가정에 대한 이러한 기본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경험하게 되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우리의 가정이 그 변화의 태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한 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실상 가정이라고 하면 가족 구성원 상호간의 사랑에 의해 지지되는 일종의 내적, 외적 제도라고 말해왔지만 사회가 다양해지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제 가정은 제도보다는 능률과 효용의 관점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가부장적 가정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결속과 책임, 도움과 보호는 차츰 사라지면서 일과 물질, 소비와 쾌락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통적인 가정 모습의 붕괴는 특히 산업화 시대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분활화된 가정의 모습은 가족 구성원들을 일의 노예로 몰고 가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케 만드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남자로서, 여자로서, 혹은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서의 정체성은 서서히 상실되어 갔고, 사회와의 관꼐에서 볼 때 결국 가정은 사회의 요구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비가 가정의 본질을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유용성은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본가치는 사라지고 하느님은 단순히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인의 급변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등장하는 오늘날 가정의 모습은 현대인의 외적 모습의 중시 현상과 매우 흡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통과 관습, 사회질서, 정신적 가치 등은 이미 고루한 것으로 배격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소위 「자율성의 문화」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가정 안에서 유용성과 쾌락만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가정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생명과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러한 현실이 오늘늘 우리 사회의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이다.
올해로 두 번째인 가정성화주간을 맞아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의 담화문은 생명의 성역인 가정이 무너지고 있음을 크게 걱정한다. 우리 사회의 출산율 급감, 이혼율 증가, 수많은 낙태가 그 구체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가정의 위기가 곧 교회와 사회의 위기라는 일종의 경종으로 알아듣고 싶다. 물질과 쾌락, 유용성과 편리함이 우리 가정과 사회의 큰 가치로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두려움의늪으로 빠져가고 있는 듯하다. 새로이 탄생하신 아기 예수와 함께 우리 가정, 사회가 이제 회개함으로써 우리 가정에서 사랑과 생명을 다시 찾아야 한다. 사랑과 생명으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의 중심이 되는 「작은 교회」로서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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