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사람의 말에 있어서는 진실함이 으뜸의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사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과 행적, 그가 처한 현실의 정황 등이 두루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말마디 자체로만 그 진실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똑같은 말이라도 그 말을 한 사람, 언급된 시간과 장소, 배경에 따라 진실함의 정도나 의도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또한 체험적으로 볼 때 가장 진실한 말은 유언이 아닐까 싶다. 정신이상이 아닌 담에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현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결코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인이 마지막 남긴 말, 유언에서 드러난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애쓰게 마련이고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 하나도 못 들어주랴” 하며 사람이 마지막 남기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얼마 전 세계인들은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비극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이른바 9.11 테러, 비행기를 통째로 몰아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이 사건은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죽음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핸드폰이나 문자 메시지로 남긴 유언의 말들이 전해지면서 우리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 최고의 진실함을 담은 그 말들을 요약하면 “고맙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세 가지였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잘못해서 남의 발을 밟은 뒤 하는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나, 상점을 찾은 고객에게 물건을 팔고 난 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거나, 연애를 하면서 남발하는 “사랑해”라는 사탕발림도 물론 그 나름의 진실성을 지닌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면서 한두 마디씩 남기는 이 엄청난 감사와 사랑의 말들이 지니는 무게에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이 개념 없는 폭력을 자행한 이들과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일곤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미사에서 이런 비슷한 정황을 접한다. 사랑을 배신한 인류의 죄악을 구속하시고자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실,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며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고 내 피이니 너희는 이것을 먹고 마시라.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이를 기념하라.
예수님은 당신을 죽음에 처하게 할 정도로까지 철저하게 사랑을 배신한 인류를 향해서 오히려 너희를 “사랑한다”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이제 그 말씀을, 그 유지를 받드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됐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어찌 그리 복잡한 일일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학의 80세 시골 어르신도 얼마든지 따를 수 있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유언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 모든 것이 사라져도 세상 끝날까지 남을 것, ‘사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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