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 시작부터 소중해
2004년 한국사목연구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배아복제, 인간복제’를 반생명적으로 보는 사람은 일반인 73.5%, 신자 79.7%였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20% 정도의 사람들은 인간배아를 조작 복제해도 좋다고 보기 때문에, 배아복제나 인간복제를 반생명(反生命) 행위로 보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실험을 해도 되느냐?”라고 하였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
우리말 속담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티끌모아 태산’이라 했습니다. 천리길은 한 걸음부터 이루어지고, 태산은 결국 티끌이 모아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티끌이 중요하고 한 걸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도 그와 같습니다. 갓난아이가 성장하여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며, 청년이 장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인간 생명의 첫 걸음에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수정란, 그리고 배아가 있었습니다.
배아가 없다면, 태아도 없고, 태아가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린이든, 성인이든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배아나 태아는 필요하다면 그 생명마저 침해해도 좋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때는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한 과학자는 위대하게 여겨졌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한 교회의 소리는 고리타분하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사실, 불치병을 치료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한 인간 치료를 위해 인간 생명인 배아를 침해하는 것은 다만 폭력일 뿐입니다.
작은 것이 있어야 큰 것도 있다
마더 데레사가 1984년경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철책선 가까이에서 누군가가 마더 데레사에게 우리 민족이 하나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했답니다. 그때 마더 데레사는 기도를 약속하면서도 민족이 하나 되려면 먼저 한국의 낙태현실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답니다.
바로 그 마더 데레사는 1994년 미국에 들렸을 때 정관계 고위 지도자 3천여 명이 참여한 조찬 기도회에서 “세계의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낙태”라고 지적하며, “낙태는 부모가 힘없는 자녀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러니 수녀님의 눈에는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철책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보다 아이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낙태현실이 더 심각한 문제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실 민족의 통일이 큰 것에 속한다면, 가정 화목은 작은 것에 속합니다. 이치적으로 보면 가정도 화목치 못하면서 민족 화목(통일)을 논하는 것은 모순 될 뿐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두 축이 사랑과 생명인데, 우리나라는 사랑을 대변하는 부부애는 세계 상위의 이혼율로 동강나고 있고, 생명을 대변하는 출산은 낙태와 세계 최저 출산율로 바닥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어린 단풍나무
어느 봄 날, 단풍나무 밑 잔디밭에 예사롭지 않은 식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하나 둘이 아니고 주변에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솟아나 있었습니다. 붉은 색 떡잎 두개씩을 뾰족이 내밀고 있었고, 떡 잎들은 그 곳에 우뚝 서있는 단풍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단풍나무들이었습니다.
30여 년 전 당시 주교님이 손가락 크기의 어린 단풍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 그토록 많은 새끼 묘목을 낸 것입니다. 그 후 어느 날 잔디 깎기로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지만, 조경석 사이사이에 아직도 제법 자란 단풍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에는 비약이 없습니다. 비약이 없기에 세월 따라 서서히 자라고 영글어갑니다. 잘라내면 사라지지만, 가꾸고 돌보면 성장하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인공수정, 배아줄기세포 등 필요에 따라 수많은 수정란과 배아들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잉여냉동배아를 쉽게 폐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아도 인간생명입니다. 배아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있다면 성장을 위한 여러 세월 동안의 보살핌이 있었을 뿐입니다.
송열섭 신부(생명31운동본부 총무.청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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