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꿈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다. 이기적이거나 무사안일해보이기도 하지만 한평생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해가며 몽롱하게 살아가는 편안한 삶은 사실 소시민들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가 아닐 수 없다. 로또 당첨을 상상하며 출퇴근 지하철에서 혼자 정신 나간 듯 미소 짓는 이들 소심한 사람들의 잠깐의 현실 도피 역시 그 동기는 편안한 삶의 꿈이다.
돈만 넉넉하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삶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부(富)이다. 돈만 넉넉하다면 높은 경쟁력을 키워주는 아이들 사교육도 가능하고, 이웃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며 고상한 취미 활동이나 값비싼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식견을 넓히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해외여행도 할 수 있고 폼 나게 불우이웃돕기에도 성금을 쾌척할 수 있다. 교무금도 많이 내고, 헌금도 수표로 하며 성당에서 높은 직위를 맡아 신부님 식사 대접도 하고 행사 때 후원금도 낼 수 있다. 그렇게 명예와 품위를 한껏 유지할 수 있다.
부의 현실적 효용성과 그 자체가 지닌 중립적 가치에 비춰볼 때 교회가 선포하는 가난의 복음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되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이 단지 가난한 ‘마음’만을 이야기한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가난은 가장 심각한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더 사랑하셨다는 것을 봐도 성서의 ‘가난’이 단지 영성적인 은유만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나는 실제로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가? 성직자나 수도자도 반드시 가난해보이지는 않는 한국 교회 안에서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오히려 로또 당첨을 꿈꾸며 속물에 가깝게 살아가는 한 그리스도인인 내가 신앙에 동기를 두고 가난을 선택할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속의 논리를 따르고, 스스로의 의지로 가난하기 위해 노력할 뜻이 없음을 고백해야 하는 이가 한국교회가 결코 가난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는데 대해 무슨 토를 달 수 있을까. 하지만 교회가 가난을 ‘지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쓸모없는 의구심은 남는다.
모두가 한 형제로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특수사목의 대상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특화된 일부 공소와 준본당 등을 제외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설 자리가 교회 안에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교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는 ‘사회복음화’ 중 ‘사회 정의’에 관한 부분 18항에서 “갈수록 중산층화 되어 가는 우리 교구의 현실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교회가 멀어져 가는 상황”을 지적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활동이 특수한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항상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준거가 되는 초대교회의 삶은 부자와 가난한 이, 권세와 명예가 있는 이와 없는 이가 모두 형제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는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낯설어 하고 이질감을 느끼는 현실은 대단히 불길한 조짐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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