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말고 다시 일어나 걸어라”
2000년 10월,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전국가정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인상 깊은 것 중 하나는 가족들이 함께한 ‘발 씻김’ 예식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사랑의 모범을 본받아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어떤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남편의 손길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고, 아이들도 처음 자신을 발을 씻는 아빠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0주 된 태아의 발
발은 대개 늘 가려져 있고, 땅바닥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온 몸을 지탱하는 발의 수고로 대부분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일도, 여가도, 그리고 웰빙을 위한 조깅이나 걷기 운동도 바로 발의 몫입니다. 신체 부분 중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겠지만, 그래도 발이 없으면 걸을 수가 없으니 다른 신체부위도 크게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발지압, 족탕, 발마사지 등을 통하여 발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지만 얼굴이나 손에 비하면 아직도 관심 밖에 있습니다. 그것은 가려져 있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가 가려져 있는 것에는 마음도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태아의 발’ 배지를 본 후부터입니다. 1993년 미국 휴스톤에서 세계생명대회가 열렸는데,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명수호운동을 상징하는 ‘태아의 발‘ 배지를 보았습니다.
태아의 발은 새끼손톱보다도 작았고, 그래도 다섯 발가락은 또렷하였습니다. 태아의 앙증스런 발 배지는 10주된 태아의 발 실물 크기의 모습이었습니다. 임신 후 10주된 아이는 엄지손가락 정도의 작은 몸매이지만 엄연히 한 인간으로서 얼굴, 손과 발 모두 뚜렷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발
본래 ‘태아의 발’ 배지의 이름은 ‘소중한 발’(Precious Feet)입니다.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은 어린이나 성인의 발과 다름없이 태아의 발 또한 아름답고 소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 발이 커서 오늘의 우리 발이 되었고, 세계적인 박지성 선수와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랑스러운 발도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발이 한국의 자랑스런 발로 여겨지는 것은 발이 남달리 예뻐서가 아니라 오히려 상처투성이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박지성 선수의 발이 수많은 연습과 험한 경기에서 거듭 상처나고 단련되었다면, 강수진 발레리나의 발도 매일 같이 수많은 연습으로 나무뿌리처럼 옹이가 박혔습니다. 영광과 환호 저편에는 고통과 고독이 있었습니다, 발레리나는 드러난 외모처럼 발도 그러하려니 했는데, 인터넷 사진에 실린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하루 10시간씩 되풀이되는 연습으로 일그러지고 툭툭 불거지고 온통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떻든 모든 태아의 발은 또 다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발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니, 다만 소중히 여기고 돌보아야 할 보배 아니겠습니까?
올바로 걷는다는 것
‘태아의 발’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면, 그 발로 장차 걸어가야 할 인생길은 더더욱 소중합니다. 각자가 걸어가야 할 그 길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한번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태중에서 발길질만 하던 아기가 태어나 눕고, 엎드리고, 엉금엄금 기고, 서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아장아장 걸을 때면 가족 모두가 환호할 일이듯이, 노인이 되어 자리에 영영 눕기까지 인생여정을 올바로 걷고 또 걷는 것은 모두가 박수를 칠 일입니다.
그 인생길에 때로는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고, 당신도 그 인생길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언젠가는 우리도 되풀이해야 할 말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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