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생명의 길을”
2004년 한국사목연구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낙태, 안락사, 인공피임, 사형제도, 자살 등 생명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이니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신자는 53.1%였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마땅하지만 따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신자는 37.9%였고, 아예 들으려 하지 않거나 시대착오적인 가르침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든다는 신자(3.5%)도 있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꽤 오래 전, 딸 둘을 둔 한 엄마는 늘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임신이 되었고 산부인과 병원에 들렀더니 건강 상 낙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교우는 고민하다 고해실에 계신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신부님, 의사선생님이 그러는데, 애기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정 이야기를 들은 신부님은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그러면 죽어야지. 아기 지우고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보다, 아이를 낳다가 죽어 천당 가는 것이 더 낳지요.”
그 말에 교우는 몹시 서러웠고, 집에 돌아와서는 인정머리 없는 성당에는 다시는 안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누그러졌고, 그 다음 주일에는 ‘죽는다면 죽지’하는 마음으로 성당을 향하여 나섰습니다.
그 뒤 교우는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오히려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가고 싶고 편한 길이 다 올바른 길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제멋대로의 길 혹은 편하고 쉬운 길이 잘못 된 길일 수 있습니다. 중위로 임관하여 임지에 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길이 비슷비슷하여 갈림길을 한참 지나서야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았습니다. 초행길에는 냇가가 좌측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측에 있으니 분명 잘못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림길까지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길에서도 잘못 들어설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걷는 길이 올바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 하셨고(요한 14, 6), 초대 그리스도교는 주님의 길(the Way)로 묘사되었습니다(사도 19, 9). 구약에서도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는 것을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습니다(신명 30, 16). 사실, ‘그분의 길’을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쉽지 않은 그 길이 생명과 행복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을 거쳐 가나안 땅에 당도하기 전에, 하느님은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중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내어놓고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잘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 19).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이냐 아이냐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방문해도 되겠는가 하는 전화였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방문한 교우의 고민은 이러했습니다. 아이가 잉태되었는데, 남편은 아이를 원치 않고 자신은 낙태를 원치 않아 결국 ‘남편과 아이’ 사이에 선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그날 오후 5시에 남편과 만나기로 하였는데, 남편을 택하려면 낙태를 해야 하고, 아이를 택하려면 헤어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을 주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자녀를 맞아들이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남편보다는 아이를 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남편 없이도 천당에 갈 수 있지만, 아이 없이는 천당에 가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교우는 돌아갔습니다. 그 뒤 수년이 흘렀고 어느 날 찾아뵙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그 교우였습니다. 6살 된 아들과 함께 그 교우가 왔습니다. 남편도 잘 있고, 아이를 더 가질 수 있길 바라면서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아마 그 옛날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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