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믿음
신앙은 믿음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너무 큰 물음에는 당연히 너무나 다양한 답들이 나온다. 그 중 하나로 이런 대답도 가능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혹은 보이는 것보다 더 확고하게”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 아닐까?
‘본다’는 것은 이성의 합리적인 논리로써 객관적인 확인과 검증 절차를 거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인데, 그 절차를 생략하고도 신뢰가 변치 않는 것이 믿음이다. 물론 신앙과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양 날개의 한 쪽으로서 이성이 지니는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임은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것처럼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인에게는 그런 자세가 요구되지만 초월적 인식에 약한 인간을 위해 배려된 것들이 있다.
교회는 성사적 공동체
교회와 성사가 그것이다. 교회는 그 자체가 신비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백성들이 모인 성사적 공동체이다. 그리고 볼 수 없는 하느님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성사들은 미약한 인간 본성이 하느님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그래서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요청되면서도 그 표지로서 성사적 실재들에 의존한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과 역사 안에 개입해 당신 뜻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손길을 본다. 그렇게 우리 신앙의 역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안는 것의 신비롭고 효과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만, 혹은 보이는 것만 지나치게 강조될 때 교회와 신앙 생활은 종종 조화와 균형을 잃는다. 예컨대, 영생에 대한 집착은 현세를 소홀하게 하고, 지나치게 현실적인 신앙은 영원의 지평을 상실한다.
내적성숙 요청
약간의 비약일 수 있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불균형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도 발견된다.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을 압도한 것도 한 가지 예이다. 70년대와 80년대 고도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과제로서 내적 성숙이 빈번하게 요구돼왔다.
조금 단순화 시켜 보면 내적 성숙은 교회 학문과 문화의 발전에 다름 아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교회가 그 쇠퇴와 퇴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편교회 안에서 누리는 높은 지위와 위상은 단지 서구 중심적 사고 하나만으로 그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그리스도교 학문과 문화, 예술의 폭과 깊이가 여전히 심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문연구 위한 사목 배려
이제 선교 3세기에 접어든지 얼마 안된 한국교회에 지나친 요구를 할 수는 없겠으나, 학문과 문화 발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투자의 적극성은 한국교회의 미래에 절대적인 것이다.
교세 신장과 새 성당 건축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학문 연구와 가톨릭 문화 진흥을 위한 사목적 관심과 배려는 강조돼야 마땅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하면 결국 보이는 것들 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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