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말에 귀기울이며 대화하려는 자세 가지자
추석날 오후였습니다. 저희 수도원에 방문하신 몇몇 가족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화제가 ‘폭력과 대화’에 관한 이야기로 모아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분이 오늘날 세상에서 참된 승리는 ‘폭력’이 아니라 ‘논술’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노벨평화상 수상자 헨리 키신저를 예로 들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가져오는데 그의 탁월한 논술능력이 한 몫을 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논술로써 승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매일 쏟아지는 폭력관련 뉴스를 접하는 제 마음이 최근 더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왜 매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라크에서는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야만 하는지…. 왜 레바논 시민들이 살상되고 폭력에 시달리며 집과 학교, 병원과 일터가 파괴되고 피로 물들어야 되는지…. 왜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려하지 않고 핵무기를 이용하여 자국 존립을 지키려는 것인지….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나라가 즐거운 추석 명절을 쇠고 있던 그날 저녁, 뉴스를 보면서 저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마음까지 어두워졌습니다.
유산상속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동생이 칼로 누나를 찌르는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이었습니다. 잠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저 형제들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지 못했을까? 대화라는 것은 사람사이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성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 중의 하나인데 그들이 대화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가족간의 대화가 부족할 때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행복의 나무는 말라 죽는 것이며 우리가 꿈꾸고 있는 천국을 침묵의 사막으로 바뀌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존재하는데, 어릴 때부터 이런 대화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면 학교 안에서는 물론 대화보다는 폭력을 앞세우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불안해지며 평화로운 사회와 가정은 병들어갑니다.
대화에서 ‘경청’은 말을 듣는 태도뿐 아니라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듣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9월 12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 중 이슬람 관련 발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경청이란 언어의 이면을 꿰뚫어 언어 속의 숨은 뜻을 이해하고 그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상대방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달포 전에 있었던 이 사례를 통하여 다시 한번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말은 오해를 낳을 수 있으므로 진지한 대화를 통해야만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사례는 강연내용 일부만을 좁게 해석한 사람들로 인해 종교간 갈등을 일으키며 긴장관계로까지 치닫는 사태를 조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존중하는 자세로 임한 대화를 통하여 갈등과 긴장을 조금은 풀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강연내용 중 일부 표현이 전하고자 하는 전체적 진의와는 달리 특정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격한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게 했고, 어떤 나라에서는 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사태를 일으키게도 했으며 심지어 성당에 불까지 지르는 상황도 벌어졌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들 사이에 필요했던 것은 대화였습니다. 상대방의 마음과 감정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다시 시작한 대화를 통하여 갈등과 오해를 풀고 충돌과 폭력으로 얼룩질 수 있는 상황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사랑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부르심입니다.
서로 간에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좋은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대화하는 기술을 잘 습득한다면 폭력과 완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가정과 사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대화로써 서로에게 승리를 안겨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걸림돌인 사회와 학교, 가정 안에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는 권위적인 문화로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상명하달식의 일방적 의사소통 방식을 버리고 상호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대화할 수 있다면 대화는 두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마침내 놀라운 기적들을 우리 앞에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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