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산업, 경제 분야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 사회의 모든 요소와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재구성한다.
IT 발전이 가져오는 변화의 가장 큰 동인은 효율성이다.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정보 처리와 전달 기술은 시간, 거리와 장소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게 한다. 그런데 효율성과 함께 IT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의 양상을 우리 사회에 드러낸다. 즉 수평적 네트워킹을 통한 집단적 합리성의 문화가 그것이다.
오늘날 온라인 세상에서 단일한 권위와 그 권위에 기댄 단독적인 지성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들은 부분적으로 심화된 지식을 지닌 개별 네티즌들이 집단적으로 형성하는 수많은 지식들의 집합체로 형성되곤 한다.
산만함이 치명적인 결함인지라 사실과 주장이 뒤섞이고, 진위가 함께 존재함으로 인해 분별과 식별의 노력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 식별의 과정까지도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지고 진화됨으로써, 이 ‘수평적 네트워킹’을 통한 집단적 합리성의 발현은 현대와 미래 세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전통적으로 단일의 권위와 수직적 위계가 그 주요한 운영 원리로 전해져온 가톨릭교회는 여기에서 어려움을 갖게 된다. 적어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까지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로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가 중심이던 가톨릭에게 수평적 네트워킹이 중심적 원리로 자리잡는 오늘날의 사회는 도전이다.
여기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그것을 전하는 방식은 자칫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가 될 우려가 있다. ‘권위’는 결코 ‘권위주의’로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에 있어서 세심한 배려가 요망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경우 수직적 위계의 교회 관행에 견고한 전통적 가부장제의 요소들이 결합함으로써, 공의회 이후 얼마간 발견됐던 ‘친교의 공동체’에 대한 지향이 퇴색한 뒤 권위주의적 관행들이 시대를 역행해왔다.
고도성장의 행복한 과거를 지금도 회상하는 한국교회는 만연한 권위주의로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그것은 ‘착한’ 평신도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평신도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평적 네트워킹이 야기하는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은 이제 현실화돼 그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그 징후는 권위주의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와 참여의 정치 원리가 자리잡으면서부터 본격화됐고, 정보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강화됐다. 이는 사회 각 부문으로 파급됐고 이제 종교는 몇 안 남은 권위주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교회는 이제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킹의 원리를 교회와 신앙생활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 그에 대한 확신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으로부터 나오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더욱 강화된다.
초대교회에서 유일한 권위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였다. 그 외의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참된 권위를 가리는 권위주의가 아닐 수 없다. 공의회가 하느님 백성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동등성을 말한 것은 바로 수평적 네트워킹, 곧 신앙과 사랑의 온라인과 다르지 않다.
IT가 제시하고 구현하는 첨단 세계의 사회 원리, 즉 수평적 네트워킹이 2천년전 초대교회의 삶의 지침이었고 그것이 또한 현대 교회를 형성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재천명됐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이를 따라야 한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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