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 의한 공멸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시월 초에 시작된 북핵 위기는 소강국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핵실험 실시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중국을 비롯한 이해당사국들의 대응, 유엔의 입장 표명 등 세계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 핵은 우리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하고 시급한 현실이 되었다.
핵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오만
이즈음 생각나는 영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4년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이고, 다른 하나는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내가 아는 한 핵에 관한 가장 독특하고 냉소적인 관점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핵무기는 ‘심판의 기계’(Doomsday Machine)라고 불리운다. 당시 세계는 미·소 두 초강대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의 와중에 있었고 두 나라는 핵무기를 포함한 군비증강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전면적인 핵공격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류의 파멸을 초래하는 대재앙을 뜻하는 셈인 것이다. 영화는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미국 공군 장성이 소련에 대한 핵공격을 지시하고 소련 역시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핵을 쏘아올림으로써 지상 곳곳에서 거대한 핵운,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여주며 인류의 파멸을 예고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블랙코미디로 만들었다. 핵에 의한 인류의 파멸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코미디라니! 엄숙론자들에게는 어불성설일지 모르나, 적어도 큐브릭에게 있어 인간은 불완전하고 무모한 존재로 비쳐진다. 더구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종종 합리적 판단을 거스르는 인간이 ‘핵’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그에게는 인간의 오만이자 코미디로 여겨졌을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는 달리
영화는 당시 케네디 정부가 미증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 그러면서 위기국면에는 냉철하게 대응하는 모습 등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공습에 의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군 장성들에 맞서 전쟁을 막으려는 자신들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해 나가는 과정은 국가지도층이 국가와 세계에 대해 어떠한 비전과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돌파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물론 이 영화가 케네디 신화화의 측면과 케네디시대에 대한 향수를 저변에 깔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쟁과 공멸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들의 결단과 행동은 본받을 만하다.
영화는 케네디의 저 유명한 연설로 끝을 맺는다.
“... 그러므로 우리의 기본적 공통점은 우리가 이 작은 행성에 공존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똑같이 2세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은 문명의 혜택을 입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혹독하고 끔찍한 대가도 치르고 있다.
핵의 발견은 탁월한 과학적 성과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파멸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현재 핵에 대한 공방과 북핵 위기에 대한 해법 모색을 위해 우리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 해결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국가간 이해와 힘의 균형, 국제정세의 흐름 등 해결을 가로막는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고 문제를 보는 관점과 입장의 차이도 클 테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공존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