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려장(新高麗葬)
지난 2004년 한국사목연구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안락사 허용에 대하여 ‘부분허용’이 바람직 하다는 의견이 일반인(79.0%)과 천주교 신자(73.0%) 모두 높았습니다.
‘완전허용’에 대한 의견까지 포함할 경우 10명 중 8명 정도(일반인 86,9%, 신자 77.0%)가 찬성하는 셈입니다.
반면 안락사의 법적 허용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천주교 신자(22.9%)가 일반인(13.0%)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안락사란?
이토록 안락사법에 사람들이 호의적인 이유는 여럿일 것입니다. 우선 그 이유로 안락사에 대한 이해를 들 수 있을 것인데, 안락사(安樂死)란 글자그대로는 ‘편안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뜻합니다. 연세한국어사전에는 안락사란 “본인이나 가족들의 동의하에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나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안락사’로 완곡하게 바꾸어 부르는 이유는 내용의 실상 즉 ‘안락살해’란 말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완곡어법은 낙태의 경우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낙태살해’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니까 완곡하게 ‘인공임신중절시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태가 일종의 수술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명을 살해하는 것이듯이, 안락사는 단순히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가 아니라 무고한 인간에 대한 살해행위입니다. 따라서 임신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존중하는 교회는 안락사가 하느님 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옛날의 고려장
고려장이란 표준한국어대사전에 “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지냈다는 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늘날 이 고려장의 역사적 진위에 대하여 논란이 있으나, 기노전설(棄老傳說)에 의하면 고대의 민속 중에 사람이 늙어 70세가 되면 지게에 실어서 산 속 깊은 곳에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도 이러한 사회의 풍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70이 되신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 속에 내다 버렸습니다. 이때 뒤 따라 오던 그의 아들이 그가 버린 지게를 다시 가져가자 그가 아들에게 왜 다시 가지고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늙어서 70이 되면 아버지 또한 지게에 지고 산 속에 내다버리려고 가져갑니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노인을 다시 집으로 모셔갔으며, 그 뒤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품위있게 죽을 권리
과거 태어날 아이들이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하여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었듯이,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장차 노인 부양이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면 ‘품위 있게 죽을 권리’라는 미명 아래 안락사 법안이 통과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1992년 서울에서 형사정책연구소가 주관하는 세미나에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안락사법에 대하여 물었고, 질문을 받은 분은 이미 법 초안은 마련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때가 되면 이 법안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혹자는 안락사법이 통과되면 엄격하게 법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 보고서에 의하면 1990년 네델란드에서는 5900여명이 본인은 원치 않음에도 안락사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떻든 안락사법이 제정되면, 오늘날 태어나고 싶어도 죽어야 하는 태아들이 많은 것처럼, 더 살고 싶어도 죽게 되는 노인들이 생길 것입니다.
하긴 현재에도 노인이 귀찮아서 제주도에다, 사회복지시설 앞에다가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락사법의 허용을 바라는 대부분의 사람은 과연 자신도 장차 안락사 되길 바란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집안의 병든 노인을 안락사하길 바란다는 것일까요?
송열섭 신부 (생명31운동본부 총무.청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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