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버리고 힘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자
가문이 발전하려면 부모보다 자식이 더 나아야 한다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집안은 발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유당 시절부터 말단 5급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은 한 평생을 5급으로 사시다가 공화당시절 정년을 하셨는데, 그때 봉급이라는 것이 자식 여섯 명 공부시킨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형제들은 너나할 것 없이 연봉이 5000만원 정도 되고, 직장에서도 책임자 몫을 살고 있으니 틀림없이 꽤 발전한 가문임에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 와중에 나의 수입(성무활동비를 수입이라고 부르는 것이 기분 나쁘지만)이 월 100만원도 안되니 혹시 나 때문에 우리 가문 발전에 누가 되지는 않는가 싶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31살 나이의 나에게 신학교를 가라고 들들 볶아대시며 검정고시 공부를 시키셨던 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게 욕을 하셨던 고 조성옥 요한 신부님이셨다. 나이 드신 어른 신부님들은 모두 아실만한 그분은 재치와 유머를 섞은, 신앙생활에 교훈이 될 만한 욕을 즐겨 하셨다.
내가 자주하는 욕은 남성들에게는 ‘드런 놈들’, 여성들에게는 ‘드런 X들’이고(특정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대상일 뿐이지만 신문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데 용서를 청하며) 세상을 대상으로는 ‘드런 세상’ 뭐 그런 식이니 이런 정도의 욕으로 어찌 우리 성소가문이 발전할 것인가? 어찌보면 집안에서나 성소차원에서나 가문의 발전에 누가되는 내가 ‘드런 놈’이 아닌가 싶다.
더럽다 함은 깨끗함의 반대개념이다. 깨끗한 물건이 이런 저런 오물을 뒤집어쓰면 더럽게 되는데, 뒤집어 쓴 오물을 닦아 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오물을 닦아내도 냄새가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복음의 예수께서 질책하신 더러움은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마르7, 21~22)이다. 작금에 미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전 지구를 덮고 있는 신자유주의야 말로 21세기의 초입에서 우리를 가장 크게 더럽히는 ‘탐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사물을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놈의 신자유주의가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작금의 우리 나라나, 우리 교회나 여타의 종교단체나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돈독이 올라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예수께서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카 12, 15)고 하신 후,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하시며 “재물창고를 하늘에 마련하라”고(루카 12, 33) 하셨는데….
한국교회는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에 해외원조를 위한 2차 헌금을 한다. 매년 10억 원 정도가 모금되는데 이를 400만 천주교 신자 수로 나누면 1인당 250원 꼴이다.
전직 대통령이셨던 아무개씨는 꽃동네 회비로 매달 1000원씩 내셨다 하는데, 그분의 1/4밖에 안되는 적은 돈을 내면서 “그래도 천주교가 이 땅에서 제일 잘 하고 있잖아?” 하며 자위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신자유주의를 닮은 탐욕귀신 씌인 ‘드런 분’일게다.
11월 11일은 대림절의 주보이신 마르티노 성인 축일이다. 성인은 아주 추운 겨울날 아미앵 성문 앞에 얼어 죽을 것 같은 거지에게 자기외투의 절반을 잘라 입혀 주었다. 그날 밤 예수께서 몸소 그 외투를 입은 모습으로 마르티노의 꿈에 나타나시어 “너희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
… 너희가 내 형제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 36. 40)라는 복음말씀의 영원한 유효성을 확인해 주셨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이 시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실천이 교회사명의 본질적인 한 부분임을 강조하셨다. (32항) 특히 지난 10월 18일 교황청 국무성 발표는 북한동포를 위한 지원에 있어서 천주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제와는 무관하게 북한동포를 도와야 한다고 하셨다. (가톨릭신문 11월 5일자 참조)
올 겨울 국제사회의 제재로 말미암아 북한 동포들의 겨울나기가 무척이나 힘들 것이라는 국제기구들의 발표를 듣는 내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지는 것은 내가 그동안 ‘드런 놈’처럼 욕심쟁이로 살았기에 가책이 되어 그런가 보다.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참 ‘드런 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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