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행복의 첫 걸음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한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손자가 대학수능시험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미사봉헌을 청하려나 보다’고.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부님, 제 손자가 이번에 시험을 봅니다. 그래서 손자를 위한 감사미사를 봉헌하려고 합니다.” 할머니의 말인즉 건강을 잃으면 시험을 보고 싶어도 못 보는 법인데, 손자가 건강하게 시험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요…그래서 감사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란?
미사성제를 희랍말로 Eucharistia라고 합니다. 그 뜻인 즉 ‘장엄한 감사’입니다. ‘감사’란 국어사전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는 것’, ‘고마움에 대한 인사’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란 ‘받은 것을 인정하는 행위’라고도 보고 싶습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산다는 것’ 자체가 ‘감사’라는 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받아야 하니 매 순간마다 감사할 일입니다. 숨쉬기 위해 공기를 받아야 하고, 식생활을 위해서는 각종 채소와 곡류, 그리고 육류를 받아야 합니다. 돈으로 산다고는 하지만, 없는 물건은 돈이 있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다고 불 뱀에게 물려 죽게 되는데 ‘불평.불만’은 감사의 반대말이 아니겠습니까? 불평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다고 느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고, 불만은 마음에 차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감사한다는 것
신학 대학시절 저는 몹시 괴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저녁 대침묵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님을 찾았습니다. 그때 지하 복도를 오가다가 문득 선배님은 “하느님께 마땅히 해드려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해?”하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과 생각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라고 쓰여 있지만 저는 그렇게 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침묵이 흘렀고, 선배님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것은 감사야!” ‘감사’ 이 말은 참 많이도 들어온 말이었습니다. 미사 때,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감사라는 말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들었음에도 안 들리던 그 말이 그제야 마음속까지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뒤로 그 말이 제 마음 속에 남게 되었고, 신앙인에게 감사란 비행기의 활주로처럼 신앙을 눈뜨게 한다는 것도 어렴풋 깨닫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전서에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
배우는 ‘학생’(學生)은 사는 것과 생명의 가치(生)를 배우(學)는 사람이고, 선생(先生)은 사는 법과 생명의 가치를 먼저 배워서 익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생’이라 불리셨고, 당신 자신을 ‘길, 생명, 진리’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니 인생의 스승이신 그분이 배고픈 5000여 명을 풀밭에 앉게 하신 뒤 아이가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유심히 볼 일입니다. 그분은 ‘겨우 이것 밖에 없느냐?’라고도 아니하셨고, ‘이까짓 것’ 하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두 손에 빵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감사를 드린 뒤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수천여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음식이 12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늘 감사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받았으니 감사할 일이고, 매일매일 필요한 것들을 받고 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감사를 하면 할수록 행복을 느끼게 마련이니, 감사는 행복의 첫걸음이 아니겠습니까?
송열섭 신부(생명31운동본부 총무.청주교구)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