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이제는 짐 싸는 일이 옆집에 마실 가는 것 만큼이나 가볍다. 결혼 후 지금까지 14년 동안 다닌 이사가 10번, 이력이 날만도 하다.
가끔 동료들과 밥 먹고 할일 없이 농을 하다가 “이삿짐은 이렇게 싸는 거야” 하며 자랑하듯 짐 싸는 요령을 일러주기도 한다.
하지만 짐짓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면 이게 머 그리 자랑이라고. 가진 것 없어 전셋집을 전전하느라 집사람 고생시킨 게 무슨 그리 잘난 일이라고 자랑삼아 떠 벌이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나마 지금 서울에 집 한 채 장만했으니 나름대로 자수성가(?)했다. 다 아내 덕이긴 하지만.
집과 관련해서 요즘 주변에서 눈에 띄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른바 부동산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부 정책에 전혀 상관없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 값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이들이 사는 집을 고쳐주는 신문사 사업이다.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 이야기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집이 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치솟는 집 값을 생각해보면 이게 집이 아니라 금은보화다. 부동산 불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니와 어쩌면 앞으로도 여전히 불패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은, 조막만한 집 한 채 가진 서민으로서는 정말 기분 상하는 일이다.
어차피 내 소박한 집 한 채 집 값이 뛰어봐야 얼마나 뛰겠는가. 거기에 비하면 수십 수백 채의 금은보화를 보유한 사람들이야 세금을 내봐야 얼마나 내겠으며, 그 세금이야 갖고 있는 집 값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아니겠는가.
투기를 막을 길이 없다. 공산당처럼 모두 국유화하지 않을 바에야. 억울한 것은 집 없는 이들, 혹은 싼 집 가진 이들 뿐이다.
그에 비하면 집 고쳐주기 사업은 어찌 보면 참으로 군색하기만 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주인공격인 수십 억대의 집들이 이미 집으로서의 가치가 전도된 지 오래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그저 비 피하고 바람 조금 피할 뿐 집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이 집 구실을 제대로 하도록 해주자는 것이 바로 ‘집 고쳐주기’ 운동이다. 비싼 집 값에 비하면 별로 큰 돈 들일 일도 아니지만 필자는 사실 그 값어치야 수십 억대 재산가의 집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이렇다. 집이 집이 아닌지라 사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집이 집 구실을 해야 우리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된다.
집이 금은보화로 여겨지지 않을 때 부동산 대책이 실효가 있는 것이고, 집 값이 잡혀서 건실하게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등 따뜻하게 몸을 뉠 수 있는 집이 있어야 우리 사회는 형제애가 넘치는 복지사회가 될 것이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서 겨우 바람 피하는데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도대체 우리 사회가 문명 사회이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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