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블랙’(Man in Black)이라는 영화가 있다. 원래 공포영화나 SF물이 주는 감각적인 긴장감을 즐기는 필자에게 1, 2 두 편의 시리즈로 나온 이 영화는 그리 팽팽한 긴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 상상력만은 정말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목이 뜻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정부 요원들이다. 이들은 지구인들 속에 숨어 문제를 일으키는 외계인들을 적발해 문제를 해결한 다음, 현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지구인들을 강렬한 불빛으로 기억을 지워버린다.
그런데 영화에서 필자가 신선하다고 생각한 발상은 오히려 다른 장면들, 영화의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에서 나타난다. 블랙유머의 일종이기도 하고 고도의 풍자와 해학이기도 한 그 장면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주인공인 제이(윌 스미스)가 공공장소에 설치된 사물함의 문을 여는 순간 나타나는 또 다른 세계, 손톱만한 인종들이 축제를 벌이다가 사물함 안으로 시선을 주는 주인공 지구인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장면이다. 문을 닫으니 그 세계는 또 다시 자신들만의 세계 안으로 돌아선다. 평범한 존재인 지구인이 신처럼 여겨지는 우스운 작은 세계.
이번에는 끝 장면. 모든 드라마가 펼쳐진 후 영화는 대단원을 비슷한 풍자로 마무리한다. 주인공이 임무를 마친 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그 문을 포함한 지구와 은하계는 또 다른 인종이 손에 들고 노는 구슬 속의 작은 세상이었다.
결국 사물함 속의 작은 세계가 지구인에게는 하잘 것 없는 미물들의 세상이었듯이, 지구인들이 지지고 볶는 이 세상은 인간보다 더 ‘큰’ 어떤 존재가 굴리고 노는 엄지손가락만한 구슬 속 세상이었다는 재미난 상상이다.
뉴에이지적인 요소를 다분히 지닌 교회의 입장에서는 매우 발칙한 영화이지만 나름대로 주는 교훈은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우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와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영화처럼 문어 같은 외계인일 수 있다는 것은 영화적 해학일 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곧 “내가 나비 꿈을 꾸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지” 하는 독백이 드러내는, 삶에 대한 불확실함과 애매함의 느낌과 상통할지도 모르겠다.
때로 우리는 꿈을 꾸며 그것이 현실인 듯 착각하다가 꿈을 깨고서야 그것이 꿈인줄 안다. 하지만 장자는 꿈을 깬 뒤에조차 그것이 내 꿈인지, 나비의 꿈인지를 모르겠단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장자에게 공감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다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 원리를 통해 생각하는 자기 존재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철학적 성찰을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죽음을 두려워했던 필자에게 그 두려움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내 존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 나이가 먹어가면서 조금씩 형태와 강도는 변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무’(無)에 대한 공포였다.
그래서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영화가 말하듯 우리를 초월하는 존재가 있다.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우리 일상이 크게 보면 사실 목숨을 걸만한 일들은 별로 없다.
우리는 자주 눈앞의 사실에 가로막혀 영원과 초월적 세상과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착각 속에 살아가기에 참된 진리와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주는 그 참된 지평을 깨달아야 함을 느끼게 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