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젊은이들의 노래를 듣다보면, 특히 랩송이라나? 뭐라나? ‘난 이랬어 넌 그렇지 그래그래 어쩌구 저쩌구….’ 콩나물 대가리의 변화가 거의 없이 빠르게 읊조리는 노래가 많은데, 이것이 노래인지 아니면 웅변대회 연사의 말씀인지 잘 알 수가 없다.(젊은이들의 노래 취향을 모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음악의 유형과 발전에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이런 표현의 용서를 구한다)
가끔이지만 나는 노래방엘 갈 때마다 흘러간 옛노래를 부른다.(우리학교 교수님들도 간혹 영명축일 행사로 회식을 한 후에는 노래방엘 간다) 언제나 내 목소리는 자갈밭에 마차바퀴 굴러가는 소리지만 그래도 감정을 담아, “일출봉에 해 뜨거든…월출봉에 달 뜨거든…”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가곡도 뽑아본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후 가사를 곰씹어 볼 때가 있다. 가사 마지막 즈음에 ‘기다려도 기이다 려어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라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속의 사람이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함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눈물이 날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파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잘 알지 못한다. 한참 팔팔할 때 연애라는 것도 해보지 못하고 이런 기술 저런 기술을 배운답시고 세월을 보내던 중, 성소에 관한 한 지독한 욕심쟁이 신부님을 만나서 검정고시를 보고 늦깎이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가슴 절절한 연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리가 없다.
그런 목석같은 내 가슴에 불을 지르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통증을 느끼게 한 유행가가 있는데,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그 노래다.(교우님들이 유치하다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날도 회식을 한 후 노래방에서 미아리고개 한 곡을 뽑고 가사를 음미하는데, ‘아빠를 기다리다 어린것은 잠이 들고…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라는 대목에 이르러 낭군님을 기다리며 수많은 낮과 밤을 울며 지새는 한 여인의 단장(斷腸)의 애절함을 헤아려보니 눈물이 핑 돌며 가슴이 아파오는 게 아닌가?
물론 술기운에 평소보다 조금 감수성이 예민해 있었겠지만 그날 나는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주님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그 여인이 남편을 가다리는 만큼 사모의 애절함을 갖고 있나?’ 생각해 보았다. 그날 밤, 나는 두 번 울었다. 그 여인의 애절함에 마음이 절여서, 그리고 입만 벌리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기다린다고 떠드는 신부이면서도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신파조의 3류 유행가 가사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3류 신부라는 점에서.
대림절이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한다면 그분은 오시는 분이지만 우리는 맞이하는 사람이다. ‘맞다’나 ‘맞이하다’의 사전적 정의에는 ‘오는 사람을 기다려 예(禮)로 받아들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예(禮)가 필요하다면, 오실 그분이 예(禮)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실 것은 과연 무엇일까? 복음은 다음 두 곳에서 예(禮)를 거론한다.
① ‘제단에 예물(禮物)을 드리려 할 때 너에게 원한품은 형제 생각나면 찾아가 화해하고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마태 5, 23~24)
②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禮服)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마태 22, 11)
두 가지 말씀을 하나로 묶어 본다면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은 주님을 만나러 갈 때 원한품은 형제와 화해를 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입지 않은 사람’은 원한품은 형제와 화해를 하지 않고도 여봐란 듯 주일 날 성당에 잘도 나아갈 것이라는 말이겠다.
대한민국 국민 50%가 이빨을 가는 원수가 있으니 북쪽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북에는 300만의 공산당원이 있고 1900만의 불쌍한 동포가 있다.(물론 공산당도 동포지만) 300만 때문에 1900만이 도매금으로 원수가 되어 있는 실정인데 이런 굳은 마음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더더욱 그리스도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에서 기다리는 마음을 배운다면 성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미구에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원수로 생각하고 이를 가는 북한 동포들과 마음으로 화해를 해 봄은 어떨까?
천주교 신자 절반이 보수적인 시각으로 남북관계를 보고 있는데, 이번 대림시기에는 정말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봄이 어떨까? 때마침 북한에 성홍열이라는 전염병이 돌아 수십만 명의 어린 아이들이 무척이나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파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 페니실린이라는 성탄예물도 준비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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