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종종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때로는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그마하지만 의미 있는 배려를 받기도 한다. 아무리 독불장군일지라도 어찌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다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움의 손길을 매번 깊이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른 이들의 내게 대한 따스한 친절과 배려를 자주 잊곤 한다.
아주 커다란 선물까지도. 마치 그것이 내가 받아야 할 권리였던 것처럼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존재 자체이고 구원의 은총이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존재 자체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또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소중한 은총의 선물을 허투루 써서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들어 올리심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선사하신 그리스도의 업적을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처럼 엄청난 선물을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원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내 존재 자체도 받은 것인데. 내 몸과 내 영혼마저 하느님께 받은 것인데 내 집, 내 재산, 도대체 무엇이 원래 내 것이었겠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소유권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뜻 있게 쓰라고 위탁하신 하느님의 것이다.
자선주일이다. 자선 행위는 모든 이들의, 특히 그리스도인의 권리이고 동시에 의무이다. 물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신을 위해서 쓸 권리가 있듯이, 그것을 이웃과 나누어야 할 의무도 있다.
하지만 그 의무는 억지로 해야 할 버거운 짐이 아니라 기쁘고 소중한 특권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상으로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행위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마태 10, 8) 할 일이다.
우리가 나눌 수 없는 것은 없다. 과부의 헌금을 주님께서는 오히려 더 귀하게 여기셨으니 가난하다고 나눌 것이 없을리 없다. 하물며 부자라면 나눌 것이 더 풍성할 것이다.
돈만 나누는 것이 자선이 아니며, 시간과 노력을 나누는 것도 훌륭한 사랑 나눔이다. 시간 날 때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화살기도 한 번 바치는 것도 신앙인의 나눔이다.
사랑 나눔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더하는 일이다. ‘사랑 나눔’은 ‘희망 더하기’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나눔들이 모여서, 희망이 없는 곳에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주며, 작은 희망들은 더 큰 희망으로 키워준다.
나눔은 세상에 만연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극심한 간격을 좁혀준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가난한 이들이 행복을 되찾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랑 나눔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본래 내 것도 아닌 것을 자기만의 것인 양 재화와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자선이 주는 그 아름다운 행복,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신비를 함께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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