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생명윤리, 도대체 가능할까?
지난 회 칼럼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생명윤리의 현주소를 짚어 보았다.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생명윤리적 가치를 외면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데 ‘올인’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진단했다.
이번 회에는 생명윤리 방법론에 관해 다루어볼까 한다. 이른바 ‘한국적 생명윤리’의 가능성에 관한 논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한국적 생명윤리’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 ‘한국적 생명윤리’의 내용이 학문적으로 공허하기 때문이요 둘째, 그것을 논의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결코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24일 황우석씨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헬싱키 선언이 있는지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본인의 무지함을 만방에 드러냈다. 1964년 제정된 헬싱키 선언(Declaration of Helsinki)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제기되는 윤리 문제를 규정한 국제적 규범이며, 오늘날 세계의 모든 생명과학 연구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문건이다. 황씨가 비록 수의사이긴 하나 엄연히 인간 수정란을 다루는 연구자일진대, 그가 헬싱키 선언을 몰랐다는 것은 마치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몰랐다는 것이나 간호사가 나이팅게일 선서를 몰랐다는 것과 다름없다.
본인의 무식함을 수치스러워 할 줄 모르는 과학기술자도 문제이지만, 동서양의 ‘문화와 관습의 차이’운운하며 ‘한국적 생명윤리’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르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일부 학자들과 공무원들의 행태를 볼 때 필자는 그들이 무책임한 사람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른바 ‘한국적 생명윤리’의 내용을 생산하기 위해 평소 학문을 연마했던 사람들이 아니요, 그들의 목적이란 오로지 비난의 소나기를 일시적으로 피해보자는 계산밖에 없음을 필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의 초기에 사태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이순신 장군도 간신배의 모함을 받았었다’식의 글을 신문에 실었던 원로 학자, 종교인들이 몇 분 있었다. 진실이 드러남에 따라 그 분들도 체면을 구겼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이영순(李榮純) 교수의 글은 압권(壓卷)이다. 황씨의 기자회견 이틀 후인 11월 26일 이 교수는 서울대 수의대 기관심사위원회(IRB) 위원장 명의로 ‘반(反)황우석 세력의 비(非)윤리적 언행’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조선일보’에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황우석 연구팀의 난자 제공 행위를‘너무나 윤리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영혼의 오케스트라’로 추켜세웠다. 또한 “연구원이 스스로 난자를 제공하여 실험에 사용한 것은 강요나 협박, 또는 영리 목적의 대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숭고함을 겸비한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의 적극적 자세로 평가받아야 할 일”이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올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펴낸 ‘황우석 연구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실상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고, 그가 위원장으로 있던 서울대 수의대 IRB는 엉터리 위원회였다는 점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5년 11월 청와대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사주(使嗾)를 받은 보건복지부 관리들이 서울대 수의대 IRB의 보고서를 대독하면서 황우석 팀의 연구는 ‘아무런 문제없다’며 면죄부 주기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른바‘한국적 생명윤리’논리를 내세워 본다 한들, 진실의 하늘은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는 법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쇄국 논리를 청산하고 보편적 논리에로 발상의 전환을 택해야 할 때다.
기쁜 일이 드물었던 올 한해. 수출 3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낭보(朗報)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외국과의 교역에 경제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서구의 생명윤리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한국적 생명윤리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순한 동기를 과감히 떨쳐내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토착적 생명윤리는 결코 생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구영모 교수(울산대 의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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