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산 나무는 참 많은 나이테를 갖고 있다. 대개 나무가 굵어지는 이유는 형성층에서 세포 분열이 이뤄지기 때문인데, 계절에 따라 세포 분열의 속도가 달라 나이테가 생긴다고 한다.
따뜻한 봄 여름에는 세포 분열이 활발해 세포벽이 두껍지 않고, 물이 많아 세포의 부피가 크며 따라서 색이 연하다.
하지만 가을부터는 성장 속도가 급격히 떨어져 세포벽이 두껍고 부피가 작다. 그래서 조직이 치밀하고 색이 진하다. 이렇게 연한 조직과 짙은 조직이 번갈아 만들어지기 때문에 동심원 모양으로 테가 생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면 그저 “나무는 나이테를 갖고 있구나” 하며 “참 신기하구나” 하고 끝날 터이다.
하지만 하나의 동심원이 나이테로 생겨날 때마다 그 나무가 얼마나 뜨거운 태양빛을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찬 서리를 맞았을까를 생각해보면 범상치는 않은 일이다.
인간도 어쩌면 그런 나이테를 영혼에 아로새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부침을 거듭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세월의 나이테가 겹겹이 생긴다.
이마의 주름살은 마음 속의 나이테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름이 깊을수록 부침의 높낮이도 컸을 것이고 뙤약볕의 뜨거움이나 서리의 찬기도 더 심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주름이 자식들의 애태움이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추측 때문이리라.
나이테가 계절을 따라 생겨나듯이 우리 시간 속에도 나이테가 있다.
‘테’라기보다는 ‘마디’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하늘로 뻗는 대나무, 마디를 만들어가면서 뻗어가는 대나무에는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마디들이 이어진다.
나이테 하나가 1년을 의미하듯, 시간의 마디들은 우리가 어디까지 살아왔는지를 알아채게 한다.
마디들을 통해 우리는 삶에 순서를 세우고 어떤 마디인가에 따라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규정하면서 하느님께로 뻗어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이어간다.
마디들이 없으면 대나무가 그리 높이 뻗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의 마디들을 만나면서 지난 삶을 성찰하고 마음가짐을 다지며 새롭게 뻗어나갈 힘을 얻게 된다.
연말연시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얻게 되는 이 시기는 우리 시간의 마디를 만드는 때이다. 뜻했던 일들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면 다음 마디를 만날 때까지 다시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된다.
하느님 앞에서야 인간의 70, 80평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조차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야 1년이나 백만년이나 모두 똑같은 것이니 시간의 마디 같은 것도 있을리 없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시간은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이요 귀하게 써야 할 보물 같은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성체 앞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 또 한 해를 주시는 하느님의 따사로운 손길을 느껴보는 것도 송년의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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