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10월 12일에 있었던 미국 하버드대학 총장 파우스트의 취임인사말이다. 19세기 말에 흑인으로는 하버드대학에서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W.E.B. 두 보이즈의 말을 인용하여, 파우스트 총장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파우스트는 하버드 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이다. 1672년 이래로 하버드 대학 출신이 아닌 인물로서 그곳 총장이 된 첫 사람이기도 하다.
파우스트 총장은 또 말했다. “대학은 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를 위한 장소다.” 대학이나 교육기관은 단순히 어느 분야의 기능인이나 전문가를 양성해내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교육의 목표는 ‘참사람 양성’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는 얘기다. 카를스루에(Karlsruhe) 대학의 공대교수 가운데 많은 이들이 철학을 부전공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한 분위기는 대학이 단순히 전문가 양성기관이 아니라 참 인간 양성의 터전이라는 파우스트 총장의 교육이념과 일치한다.
필자는 1981년 독일 뮌헨에 발을 디디며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에 매료되었다. 유학생활에서 얻은 것은 신학지식 못지않게 그 곳 문화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시민의 친절과 질서였다. 대도시 뮌헨대학 멘사(mensa)에서 몇 차례 점심을 먹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놀랄 정도로 가지런히 또 차분히 멘사를 드나들었다. 그러한 질서와 문화 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 즈음 오스트리아 인스브룩(Innsbruck)에서 울창한 전나무 숲을 지나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회개하고 반성하는데 왜 일본은 그렇지 못하는가가 화두였다. 예를 들면, 독일 나치에 항거하다 형장에 이슬로 사라져간 한 여고생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 ‘백장미(Die weisse Rose)’가 튜빙엔 대학가에서 상영될 때 수많은 독일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몇 주 동안 아주 숙연한 자세로 마음 아파하는 분위기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인들은 그리스도 정신이 삶의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조상의 잘못을 남의 것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것으로 알고 뉘우치고 있다는 공통의견이었다.
파우스트 총장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대학이 무엇을 위한 책임성을 갖는지를 정의하는데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우리는 대학생활이 창조하는 부가가치를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졸업률, 대학원 입학자료, 표준화된 시험점수, 연구비, 교수 논문 게재율 등을 보고하지만 이런 조치들로는 성과 자체는 물론이고 대학이 가진 포부를 파악해낼 수 없다.”(경향신문, 2007년 10월자 10쪽) 교무처장으로서 대학종합평가를 준비했던 지난해를 돌이켜보며 가슴이 찡해온다. 파우스트 총장의 지적은 곧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그대로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이기에 그렇다.
작년 11월 독일남부 에르팅엔(Ertingen)을 방문했다. 유학시절에 언제나 찾아가 편히 쉬곤 했던 집의 90세 할머니가 위독해서 마지막으로 찾아갔었다. 91세 된 언니와 함께 미혼으로 살아가던 분이었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오곤 했다. 신앙심은 물론이고 대화할 때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분들 가슴속에서 샘솟는 풍요로운 지식과 자연사랑, 인간사랑, 하느님사랑은 언제나 큰 위로와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
무엇이 그분들을 그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풍요롭게 만들었는가? 먼저 깊은 신앙교육을 꼽고 싶다. 이어서 학교에서 배운 것과 일상생활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교교육이 지식을 쌓는데 치중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준 것이 아닌가 싶다.
튜빙엔 대학에서 그리스어 시험(Graecum)을 준비하고 성경기초를 다지던 시절 몇몇 학생들과 둘러앉아 앞서가는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배우던(Tutorium) 기억이 새롭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내신등급제 때문에 서로를 선의의 경쟁상대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게 마치 적수처럼 여긴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 매우 안타깝다. 개선책은 없는지 책임자들은 깊이 반성할 때이다.
하버드출신이 아닌 데도 그에게 총장직을 맡긴 그 곳 분위기와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신임 총장 파우스트의 말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역시 기능인, 전문인 양성(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전문가를 참사람으로(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을 되새길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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