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발전 없는 우리 반성할 때
개신교의 신문사 기자였던 분이 오래전 ‘서울 예수’라는 책을 쓰셨다.
내용은 예수님이 서울에 오셔서 당신 제자들을 찾아 가셨는데 어느 예배당을 가보아도 당신을 반기는 곳은 없더라는 것이다.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예배당도 있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당신을 반기지 않는 예배당도 있어서 당신의 가르침은 찾을 수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것은 당신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는데, 신도들이 버글버글하는 대형교회 일수록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채 번창하는 반면, 정작 가난한 이들이 모여 있는 뚝방 동네, 달동네의 쪽방 교회는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얼마 전 개신교 학자 두 분이 지난 20여 년간 천주교는 교세가 번성하였고 개신교는 교세가 쇠퇴하였다는 통계청 발표 이유를 찾아 나섰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책장 구석에 먼지 쌓인 ‘서울 예수’가 떠올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개신교에 예수님을 맞는 곳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머무실 공간을 마련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통계청 발표대로 천주교 교세가 크게 늘었다면 그 발전이 내적인 발전인지 아니면 외적인 발전인지 따져볼 일이라 생각되었다.
가야산 해인사의 성철 큰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예수교를 믿으려면 예수를 믿어야지 신부, 목사를 믿으면 안 된다. 불교를 믿는다면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지 승려 따라 가다가는 거꾸로 간다. 아무쪼록 예수교를 믿으면 예수님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하고,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절은 불공을 가르쳐 주는 장소이며, 불공대상은 절 밖에 있다. 일체 중생이 불공대상이다.”
2004년에 나온 “세상에는 이런 교회도 있다” 라는 책을 보면 앞의 개신교 두 분 교수님은 마음 고생하지 않아도 될 법하다. 1부에는 창조적인 문화를 가꾸는 교회들이 소개되고, 2부에는 지역사회와 함께 삶을 나누는 교회들이 소개되고, 3부에는 사랑과 봉사로 이웃을 섬기는 교회들이 소개되는데, 하나같이 천주교 신부인 내가 질투나도록 부러운 모습들이다.
양재동의 모 교회에는 ‘복지국’을 두어 재정의 40%를 지역사회의 복지에 사용한다고 한다. 가난한 학생 수십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입원환자, 수술환자, 산모 병원비와 장례비까지 도와주고 있단다. 개신교의 이런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우리가 벤치마킹 할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요즘 가난한 이를 돕는 면에 있어서 불교의 활동이 눈부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활동이 미미하였던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사회복지 진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 큰 스님 말씀처럼 불공의 대상자가 절밖에 있음을 알고, 스님들이 목탁 치며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복 빌어주는 것이 불공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임을 깊이 이해하고 참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큰 스님은 그럴 때 불교의 새싹이 튼다고 하셨는데, 이미 불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로 가득한 큰 숲으로 바뀌고 있다.
이 땅의 천주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려면 복음과 진리에 충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시대의 상황에 맞는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80년대와는 달리 최근 10여 년간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퇴색한 듯 하고 시대와 문화를 주도한 적 없이 늘 끌려만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탄 자정미사 전례는 두 가지의 역설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는 말구유의 교훈이다. 우리는 왕궁의 비단 강보에 싸여 누우신 구세주를 경배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모습으로 오시어 말의 여물통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린다. 이는 우리 주변의 소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서 구원과 희망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대아의 어둠을 지켰던 목동들처럼 누가 뭐라 해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성직자, 수도자, 신자 모두가 주변의 가난한 예수님을 위한 봉사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어둠 속에서 깨어있는 파수꾼의 몫을 찾아, 이 시대 새롭게 강생하시는 구세주를 경배할 수 있다.
새해인 2007년에는 천주교가 그런 교회로 참된 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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