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자·식물인간 상태 엄연히 달라
지난 회 칼럼에서 필자는 인간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루었다. 이번엔 인간 생명이 언제 끝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어느 때 사람이 죽었다고 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해 여러 입장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심폐사와 뇌사이다. 심폐사(心肺死)는 임상적인 죽음으로서 호흡, 심장 그리고 뇌 활동이 모두 정지된 상태이다. 한편, 뇌사(腦死; brain death)는 대뇌피질을 비롯하여 소뇌, 중뇌, 뇌간 등 뇌의 모든 활동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인간 죽음의 99%는 심폐사이다. 나머지 1% 정도의 사망자들만이 뇌사의 고려대상이 된다. 뇌사가 비록 그 비율에 있어서 매우 작지만 절대수치에 있어서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마다 2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다. 뇌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뇌사를 심폐사를 대신할 죽음의 판정기준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자. 그들의 주장은, 호흡과 심장박동이 인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뇌사에 관한 찬반 논의는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죽음의 유일한 기준은 심폐사였다. 심폐사 판정에는 세 가지 기준이 사용된다. 첫째, 호흡정지, 즉 폐의 기능이 정지하는 것이다. ‘숨을 거둔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는 것인데 이는 ‘맥박이 멎었다’또는 ‘몸이 차가워진다’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뇌의 기능 정지를 들 수 있는데 임종에 즈음하여 의사가 소형 라이트를 환자의 눈에 대어 확인할 때 눈동자가 빛에 수축하지 않으면 뇌의 활동이 정지한 것이다.
심폐사의 기준에서 보면, 뇌사 상태의 환자는 심장박동, 호흡 등 생물학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단 뇌사 상태에 이른 환자는, 오진(誤診)이 아닌 한, 절대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의 소생술(resuscitation)에 힘입어 뇌사 상태에서도 환자의 호흡과 혈액순환을 얼마동안 인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은 대략 2주 정도이고 한 달을 넘지 못한다.
흔히 뇌사에 대한 오해는 뇌사를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 PVS)와 혼동하는 데 기인한다. 뇌사는 PVS와 엄연히 다르다. 뇌사자는 뇌의 모든 기능을 상실한 데 반해,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경우 뇌의 일부, 즉 뇌간과 중추신경계가 살아있다. 뇌간에 있는 호흡중추에 의해 PVS 환자는 생명유지 장치의 도움 없이도 자발호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PVS 환자는 의식을 담당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의식에 관계된 활동을 일절하지 못한다. PVS 환자들이 이러한 ‘식물’ 상태에서 수 년, 길게는 수십 년간 생존한 사례들이 보고 되고 있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들 중에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국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대개 뇌사가 죽음으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현행 법률인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뇌사자를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제 3의 부류로 간주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뇌사자는 사망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정한 절차를 거쳐 뇌사자로부터 이식용 장기를 적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한 시각에 사망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법률은 심폐사를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하되, 뇌사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장기를 기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뇌사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도 우리 법률과 유사하다. 가톨릭교회는 심폐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보고 있지만, 뇌사에 반대하지 않는다. 뇌사 판정 지침을 제대로 따른 의료진이 내린 뇌사 결정이라면, 뇌사자로부터 이식용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구영모 교수 (울산대 의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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