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달구어진 프라이팬 앞에 앉아 김을 굽는 여자가 있습니다. 왠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그 여자, 오늘도 시장 골목 모퉁이에서 매운 연기에 눈을 자주 감습니다. 뜨거운 불에서 재빨리 몸을 뒤집어야 하는 김 대신 그녀의 얼굴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려 보입니다.
자주 생각나고 걱정스러운 그 여자, 어디에 사는 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녀를 생각하면 왜 나는 돌보지 못한 육친처럼 가슴이 아파올까요. 마치, 시집간 동생이 오랫동안 소식을 끊고 시장 한 귀퉁이에 앉아 생을 뒤척이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이건 내 감수성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넘치는 정 때문입니다. “엄마, 김 아줌마는 정말 다정다감해요. 늘 친절하고 한 장이라도 덤을 주려고 애 쓰시고!”
3년 전, 먼 거리로 이사를 했지만 우리 식구들은 누구나 골목시장을 지나치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김을 사러 그 곳을 찾습니다.
덤을 더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녀의 마음 때문입니다. “멀리서 또 오셨네요. 건강하시죠? 이렇게 잊지 않고 볼 수 있으니 참, 좋네요!”
이럴 때 그녀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환합니다. 몇 천원 치 더 팔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나는 압니다.
삶은 옥수수 한 봉지 따끈히 내미는 그녀와 받지 않으려고 돌아서는 내 마음 모두가 뭉클합니다. 서로 고맙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김을 굽고 살아가지만 그녀의 삶은 건강합니다. 불 앞에서 잠시도 긴장을 놓지 않는 삶의 의지이며 순명이니까요.
순한 들기름 향기를 그대로 지닐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정성이며 삶의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나 봅니다.
김정인(아녜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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