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죽음의 문화
오늘날 지구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는 실로 경악할 정도이다. 그 심각성은 인류에게서 이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자살과 타살 소식들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가 이제 극소수의 사회 일탈자들이 행하는 범죄의 수준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생명에 대한 공격이 광범위하게 일상화됐고,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로서 그 책임과 해악을 함께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한 연예인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불러왔다. 그 죽음을 전하는 소식들은 대체로 우울증과 인터넷을 통한 악설 댓글, 소위 ‘악플’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
하지만 이 비극적 사건의 원인이 두 가지로 모두 설명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상태, 즉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병적인 심리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계의 한 관계자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악플이 죽였다고요? 아니요. 우리 모두가 그녀를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에 압도돼 나약한 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관심과 배려를 잃어버린 사회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의 발병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악플의 경우에는 더욱 노골적이다. 심지어 이미 자살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일부 네티즌들의 악의적인 댓글은 멈추지 않았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한 인간이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음에 대해서 일말의 배려도 없었다. 이들에게 생명은 존중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자살은 타살과 다르지 않다.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철저한 무시를 우리는 빈발하는 테러와 반테러 전쟁에서 본다. 불과 수일 전에도 이라크에서는 미군의 추가 파병 첫날, 폭탄 테러가 잇달아 100여명이 사망했다.
이미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테러와 반테러 전쟁은 당사자들이 애써 강변하는 ‘정의’라는 명분이 무색하게 희생되는 이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 민간인들, 특히 연약한 아이들과 부녀자들이다.
범인에는 테러분자들 뿐만 아니라 테러의 종식을 빌미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반테러 전쟁의 수행자들도 포함된다.
아무리 정당한 정치적 구호와 신념을 앞세운다고 해도 결국 무죄한 생명을 공격하는 폭력은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심의 발로이며,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정당방위의 이론을 바탕으로 생명에 대한 공격이 부분적으로 인정되는, 전쟁이라는 한계상황이 아닌 가운데에서도 제도적으로 살인 행위가 보장되는 제도를 여전히 운용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극단적으로 단죄하는 사형제도가 그것이다.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이유로, 그리고 이미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범죄억제력을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사형제도가 폐지되지 않고 있다.
후세인 사형집행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국제 사회에 사형제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가톨릭교회는 사담 후세인의 사형이 결코 이라크에 정의를 바로세우고 평화를 회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없음을 누차 천명한 바 있다. 인간 생명에 대한 극단적인 단죄는 결코 정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공권력에 의한 타살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살과 타살이 일상화된 사회, 죽음의 문화가 공공연하게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부분적인,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방법으로 가능하지 않다.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대주제에 대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철저하게 공감하고, 모든 국가 정책과 법, 제도가 생명의 수호라는 지고의 과제를 향해 재정립돼야 한다.
우울증과 악성댓글
초기 단계의 생명인 배아 연구의 전면적인 금지, 모체의 자궁 안에 존재하지만 엄연히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인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로서 낙태의 철저한 금지, 제도적 살인 행위인 사형제도의 페지가 우선적인 과제이다.
경제적,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강화, 질병이나 기타의 이유로 우울증 등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 대한 상담과 구호 활동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다. 청소년들에 대한 생명 교육도 절실하다.
인간 생명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심각한 병리 현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최근 한 연예인의 비극적 사건은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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