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요한묵시록 3,16)
무서운 말씀이다. 우리는 종종 이쪽저쪽에 다리를 모두 걸치고 앉아 이쪽이 만만하면 이쪽으로 기울고 저쪽이 만만하면 다시 저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어느 한 쪽에 확신이 없으니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사랑의 하느님이시지만 정의의 하느님이시기도 한 그분께서는 진리와 정의의 편에 결연하게 서지 않고 중간에 서서 눈치를 살피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경고한다. 차라리 너를 뱉어 버리겠다고.
세속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이러한 경향을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자주 발견한다. 시대착오적인, 과도한 엄격함은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단죄했던 율법주의에 떨어지기 쉽지만, 지나치게 이완된 신앙생활과 윤리의식은 급기야 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한다. 결국 “누가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물었을 때, “제가 그리스도인이요”라고 나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세상을 뛰어넘어 세상과는 구별되는 ‘대조사회’의 이상은 초대교회가 구현했던 참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주위의 논리와 가치와는 다르게 살아감으로써 “바로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교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선교,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은 이처럼 세속의 논리와 가치와는 다른 ‘대조사회’의 전망 안에서 그 씨앗이 발견된다. 공의회가 말한 ‘쇄신과 적응’은 미지근한 타협이 아니라 ‘대조사회’의 현대적 구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결론을 말하자. 무디어진 날을 세워야 한다. 세속의 풍파에 날이 무디어졌으니, 뭉툭해진 날을 기도와 성사로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하느님께서는 ‘뱉어 버리겠다’는 말로 경고하신다.
교회의 가르침은 준수해야 한다. 그것들은 그저 좋은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교회의 윤리적인 가르침들을 더욱 깊이 성찰하고 배우며, 이를 실제로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최근 들어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재개될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는 황우석 사건으로 주춤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모색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는 황우석 박사까지도 연구를 재개하고 있다.
배아 연구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국가 경쟁력과 막대한 이윤 추구의 동기에 고무되는 과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비뚤어진 민족주의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안은 명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이제는 교회의 입장에 각을 세울 때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생명윤리 문제에서 만큼은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명확한 태도 표명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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