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병원에 안가.” 점점 야위어가는 오빠를 볼 때 마다 형제들은 검진을 받아보라고 수 없이 권했건만 오빠는 번번이 고개를 가로저으셨습니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 이었지 않을까요.
그런 오빠가 급작스레 입원을 하고 심장수술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들렀으면 수술을 하지 않고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한 것이었답니다. 결국 설마가 병을 키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빠는 무신론자입니다. 동생이나 조카딸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쓸데없는 짓” 이라고 면박을 주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오빠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한테 신세를 지면 배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형제는 압니다. 그럼에도 평탄하지 못한 삶, 일찍 간 아내, 성한 곳이 없는 몸….
그러니 늘 세상을 내려놓고 사는 듯 희망은 오빠에게 신기루 같은 것이었겠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설마’를 품고 사는 내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무사안일, 보살피고 다독여야할 일상의 소소한 방관들, 몸과 영혼도 끊임없이 닦고 기름 치고 조여야 제 가치를 지닌다는 보편적 의식의 부재…. 고백하오니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금 오빠는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시간 맞춰 약을 복용하고 음식조절에도 신경을 많이 쓰십니다. 몸에게도 약속을 지켜야 몸이 나를 지켜줄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틈새에 슬며시 자리를 잡고 있을 이것, 경계해야합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
김정인(아녜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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