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구, 인권 보호가 최우선
현대 의학은 연구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의학 연구의 영역은 매우 넓다.
생리학, 생화학 같은 기초의학 연구로부터 신약이나 새로운 진단법, 치료법 또는 기구를 환자에게 시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 또한 다양하다. 미생물이나 동물 또는 세포가 아닌,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 즉, 임상(臨床)연구(clinical study)에는 윤리적인 고려가 필수적이다.
의사는 치료자인 동시에 의학 연구자이다. 서로 다른 두 역할이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는, 마치 자신의 자녀를 자기 학급에 둔 담임선생님처럼, 두 가지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내야만 한다.
임상연구는 대형 병원에서 활발하다. 대형 병원을 찾는 환자는 더 나은 진료를 기대하는 맘으로 가겠지만, 막상 내원한 환자는 임상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해 달라는 의사의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임상연구를 꼽으라면 신약을 테스트하는 임상 시험(clinical trial)을 들어야 할 것이다. 신약이 개발되고 나면 건강인 및 환자를 대상으로 수차례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한 후에야 비로소 판매가 허가된다. 우리나라의 임상 시험 기관은 2007년 1월 현재 115개가 전국에 퍼져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들을 관리한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해 수천 건의 임상연구가 실시되고 있는데,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에게 연구 계획에 따라 위약(僞藥)이 투여되는 경우도 있다.
임상 시험의 윤리에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용된다. 이 기준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일본이 자행한 인체 실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뉘른베르크 강령(1946년), 헬싱키 선언(1964년)을 거쳐 오늘날 국제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은 이 기준의 핵심 사상은 피험자의 자발성과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에 있다.
비윤리적 인체 실험의 역사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1936년부터 40년간 가난하고 못 배운 수백 명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을 행한 바 있었다. 터스키기 매독 연구로 알려진 이 실험이 1970년대 일반 대중에 알려지면서 의학 연구 계획을 사전에 심의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오늘날 흔히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로 불리는 이 위원회는 의학 연구 계획의 윤리성 및 과학성을 사전에 심의하여 승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황우석 사태 때 서울대와 한양대가 엉터리 IRB를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 각 연구기관에서 최근 IRB 활동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동물 실험과는 달리,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는 피험자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의학 연구에서 기대되는 과학적, 사회적 이득이 제 아무리 크다 해도 피험자의 복지가 부당하게 희생되는 일이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이런 요구사항이 국제 기준인 헬싱키 선언에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간과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피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자발적 동의는 물론이요, 언제든지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와 피해가 발생 했을 때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여기에 속한다. 피험자들은 설명문 및 동의서의 내용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도록 해야 하며, 문서의 사본을 받는 일도 빼먹어선 안 된다.
국내 최대의 의료네트워크인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전국의 8개 병원에서는 임상연구가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다. 2006년 보건복지부 지역임상시험센터로 지정받은 강남성모병원에서 최첨단 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음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당분간 우리나라 전체의 임상연구 건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임상연구의 윤리 또한 발맞추어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
구영모 교수 (울산대 의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